1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 52시간 도입에 따라 주말에는 은행장이 직접 운전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금융지주 전체가 비용절감에 돌입한 상황에서 운전기사 등을 추가로 요청하기가 여의치 않아서다. 운전기사 없이 주말에 은행장의 장거리 운전을 용인하는 것은 조직 전체에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선진국의 경우 기업 최고경영자(CEO) 등 임원진이 해외출장을 갈 때 같은 항공기를 이용할 수 없도록 하는 등 만일의 사고에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다”며 “주말에 CEO가 직접 운전할 경우 예상치 못한 리스크에 직면할 수 있어 비용절감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조직 전체로는 리스크”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이 은행은 내부적으로 논의 끝에 행장의 경우 주말에도 운전기사를 배정하는 쪽으로 결론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이 성장할 때는 주 52시간 도입에 따른 충격이 크지 않겠지만 사례를 든 은행처럼 실적 성장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서둘러 제도를 도입하다 보니 크고 작은 트러블이 생기는 것이다.
정부는 주 52시간 도입에 따른 근무시간 축소와 이에 따른 추가 채용을 기대했지만 은행의 대응을 보면 정반대의 결과를 낳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중은행들은 PC오프제나 유연근무제 등을 속속 도입하지만 반대로 정형화된 단순업무의 경우 로봇프로세스자동화(RPA)를 통해 추가 인력 채용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다. 정부의 뜻대로 주 52시간 도입이 일자리를 늘리는 효과는 크지 않다는 게 단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실제 주 52시간 도입에 따른 인력 충원을 놓고 노조와 은행 간 힘겨루기도 빚어지고 있다. 노조는 인력을 더 충원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사측은 비대면 채널 비중이 높아지면서 점포와 인력을 줄이는 상황인데다 RPA를 통해 업무를 자동화하는 데 투자하고 있어 추가 채용은 어렵다며 맞선다. 일부 금융지주는 고육지책으로 지주와 본점 인력 등을 영업지점으로 내려보내고 있지만 일시적인 처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정 기간 업무가 집중되는 정보기술(IT) 부서나 국내외 시차로 야간근무가 빈번한 딜링룸도 예외 없이 주 52시간제가 적용되다 보니 초기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한 시중은행 딜링룸에서는 시차를 고려해 일부 인력이 남아 초과근무시간에 트레이딩 업무를 하는가 하면 KB국민카드·NH농협카드 등 일부 카드사들은 52시간 기준에 맞춰 차세대 시스템 도입 목표 시기를 정하려다 보니 직원들의 피로감이 배가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한 명이 월요일과 화요일에 초과근무를 했다면 다른 직원은 수요일과 목요일에 야근을 하는 식으로 주 52시간을 맞추고 있다”며 “근무시간이 일정하지 않다 보니 직원들이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시행 초기다 보니 지원부서가 매뉴얼 마련 등을 위한 시간이 부족해 주 52시간을 독려하는 부서가 오히려 주 52시간을 어기는 웃픈(웃기지만 슬픈) 상황도 있다”고 말했다.
대형 금융사에 비해 인력이나 인프라가 부족한 중소형 금융사들은 고민이 더 크다.
주 52시간 시행으로 본사는 물론 각 영업점의 회식까지 갑작스럽게 줄면서 자영업 경기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 시중은행장은 “일·가정 양립을 위해 회식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수십만의 고용을 창출하고 수백만 고객을 상대하는 금융사들이 회식·접대 등을 갑자기 줄이면서 지역 경제로 유입되던 돈줄도 마를 수밖에 없다”면서 “법인카드 사용이 크게 줄면서 소비경기가 급격하게 악화한 일본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