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한일 경제전쟁…'조선빅딜'에 불똥 우려

현대重 이달중 日에 신고서 제출
거부하면 대우조선과 결합 무산
아베 "수출제한 WTO원칙에 맞아"
관세인상·비자제한 등 추가 검토


일본의 경제보복이 ‘조선 빅딜’에 직접적 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 당장 일본 경쟁당국이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심사를 정치적 이유로 늦추거나 불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와 스마트폰 소재에서 시작한 수출규제도 자동차와 수입 중소기업은 물론 해운업 등 서비스업에 전방위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은 대우조선 인수를 위한 기업결합신고서를 이달 중 일본에 제출할 예정이다. 대우조선을 인수하려면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이 매출을 일으키는 지역 중 반(反)독점 관련 법령이 있는 국가에서 기업결합 허가를 받아야 한다. 현대중공업그룹은 한국과 유럽연합(EU)·일본·중국·카자흐스탄 등 심사 대상 5개국을 확정했다.

조선업계에서는 일본의 경제보복과 맞물리면서 당초 EU나 중국에 비해 수월할 것으로 여겼던 일본에서의 결합심사가 난관에 부딪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조선업계 고위관계자는 “EU와 달리 일본에서의 결합심사는 비즈니스보다 정치적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일본 정부가 반도체에 그치지 않고 전선을 확대하면 마침 기업결합을 신청한 한국 조선산업 ‘빅딜’이 타깃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한 국가라도 결합을 불허할 경우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우조선 인수가 무산된다는 점이다. 해당 국가의 판단을 무시하고 인수를 강행할 수는 있지만 이럴 경우 그 국가에서는 사업을 할 수 없게 된다. 세계를 무대로 하는 현대중공업그룹이 일본 사업을 포기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날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후속조치임을 사실상 인정했다. 아베 총리는 “(이번 조치가) 세계무역기구(WTO)의 규칙에 부합한다”며 “자유무역과는 상관없다”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는 “국가와 국가의 신뢰관계로 행해온 조치를 수정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본 언론들은 아베 정부의 추가 보복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반도체 등의 소재 분야에서 향후 수출제한 대상 품목을 확대할 방침이며 나아가 한국인에 대한 비자발급 제한 조치 등까지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의 경제보복 전선이 확대될 경우 조선산업뿐 아니라 해운과 자동차·중소기업계까지 전방위로 피해가 확산될 것으로 우려된다. /박한신·박민주기자 hspark@sedaily.com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로 시작한 한국에 대한 일본의 경제보복이 산업 전반으로 확산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퍼지고 있다. 일본 언론이 “향후 수출제한 대상 품목을 확대할 방침(마이니치신문)”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는 가운데 마침 한국 조선산업을 재편하기 위한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신청서가 일본 정부의 문 앞에 있는 상태다. 일본과 중국 등 결합신청서를 제출하기로 한 5개국 중 한 곳이라도 불허하면 두 회사의 결합은 무산된다. 이를 무시하면 해당 국가에서는 더 이상 사업을 할 수 없어서다. 한국 조선산업의 미래를 결정할 조선산업 ‘빅딜’의 공이 일본의 손으로 넘어간 것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이달 중 일본 경쟁 당국에 두 회사의 기업결합신청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당초 현대중공업그룹에서는 결합심사 통과를 위한 최대 ‘승부처’를 유럽연합(EU)으로 점쳤지만 일본 심사를 앞두고 묘한 기류가 흐른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일본 정부가 전략물자 수출까지 무기로 삼기 시작한 마당에 조선업이라고 비즈니스 관점에서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원래부터 반기지 않았던 두 회사의 결합을 쉽게 허락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조선업계에서는 일본 경쟁 당국이 결국에는 기업결합을 승인하되 그 과정에서 여러 조건을 내세우며 몽니를 부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일본 기업들도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합병심사를 받는 경우가 많아 역풍을 우려할 수밖에 없지만 정치적 고려와 일본 조선산업의 이익을 적절히 섞어 여러 조건을 달 수 있다는 것이다.

울산 동구에 위치한 현대중공업 전경.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이 일본의 기업결합심사 지연 가능성 등으로 어려워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중공업

일본이 내세울 수 있는 조건을 전망하기는 이르지만 조선업계에서는 시장점유율 상한이나 자산 매각 등의 조건을 달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조심스럽게 나온다. 침체에 빠진 글로벌 조선업에서 그나마 발주가 이어지고 있는 선종이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이다. 이 분야에서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의 합계 점유율은 60% 이상이다. 반면 일본은 철저히 소외되고 있다. 지난 2015년 이후 일본 조선사들은 LNG 운반선을 한 척도 수주하지 못했다. 일본 정부가 LNG 운반선 등 특정 분야의 점유율 제한을 조건으로 내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지점이다. 자산 매각 등을 요구하며 몽니를 부릴 수도 있다. 이번 사례뿐 아니라 각국의 기업결합심사에서 합병 조건으로 비대해지는 자산을 매각하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조선뿐 아니라 해운업계에도 불똥이 튈 수 있다. 현대상선이 어렵게 들어간 해운동맹인 디얼라이언스는 일본 해운사 ONE이 주축이다. 일본 컨테이너사 3곳이 합병한 ONE은 합병 과정에서 일본 정부 지원을 받아 정부의 입김이 센 것으로 알려져 있다. 향후 동맹 내에서 노선 등을 정할 때 일본 해운사와 현대상선이 불협화음을 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반도체와 함께 일본의 첫 타깃이 된 디스플레이 업계의 걱정도 커지고 있다. 생산에 핵심적인 장비를 대부분 일본에서 생산하는 탓에 일본이 몽니를 부리면 속수무책에 가깝다. 박막트랜지스터(TFT)에 미세한 회로를 새기는 노광장비는 일본 캐논·니콘이 99.9%의 점유율로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스마트폰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을 만들 때 쓰는 증착장비 역시 일본 캐논도키의 글로벌 점유율이 90%를 넘는다. 증착은 진공 상태에서 발광물질을 끓여 유리기판에 붙이는 공정이다.

이들 장비의 수입이 막히면 삼성디스플레이·LG디스플레이의 생산 라인 증설이 불가능해진다. 현재 국내 패널 업체들이 OLED 중심으로 생산구조를 전환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더 큰 악재가 될 수 있다.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의 등장으로 기존의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가격이 급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디스플레이는 내년께 퀀텀닷 유기발광다이오드(QD-OLED) 투자를 앞두고 이미 일본 캐논도키에 장비 개발을 의뢰한 상황이다.

일본 소니가 시장을 장악 중인 이미지센서 수입 제재에 대한 우려감도 있다. 주차보조시스템 등에 소니의 이미지센서를 사용하는 현대·기아차도 생산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계도 긴장하고 있다. 당장 중소 수입업체들은 비상이 걸렸다. 국내 수입상사 중에는 히타치 등의 생산용 설비를 취급하는 곳이 많다. 업계 추산으로는 전체 수입업체의 30% 이상이 내구재를 취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 중 대다수가 반도체 제조용 설비라는 점이다. 가뜩이나 반도체 설비투자가 위축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일본에서 우리나라를 대상으로 공격적인 통상정책을 펼치면서 수입상사들은 긴장하고 있다.

홍광희 한국수입협회장은 “어제 일본의 수출 규제안이 발표되면서 회원사들이 얼마나 피해를 입을지 확인에 들어간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만일 일본의 통상압박이 장기화된다면 반도체 설비를 주로 취급하는 국내 수입상사를 중심으로 큰 타격이 올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 경우 반도체 설비뿐 아니라 관련 부속부품을 거래하는 업체들에도 부담이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소 가전·모터업계도 긴장하고 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면서 집적회로 등 안보 관련 제품을 국내에 수출할 때 별도의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중소 가전업체들은 일본의 도시바 등에서 집적회로를 주로 쓰고 있다. 이로 인해 향후 집적회로가 ‘무기화’되면 파장이 클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박한신·박효정·심우일기자 hs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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