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질환이 만성 스트레스로 인해 세포가 내부의 물질을 먹어치우며 자신을 보호하는 ‘오토파지(Autophagy)’에 의해 해마 신경줄기세포가 죽기 때문이라고 밝힌 유성운(오른쪽)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교수와 정성희 석박사통합과정생. /사진제공=DGIST
지난달 29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되는 배우 전미선씨는 평소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었다. 과거 적지 않은 연예인들이 방송에서 우울증을 앓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일반인 중에서도 우울증을 앓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자책감에 사로잡힌 가족에는 질병이나 사고사로 인한 이별보다 더 큰 상처가 된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로 치부되기도 하나 실상 뇌 신경질환으로 환자 중 10%가량이 자살로 이어질 정도로 무서운 병이다. 매사에 무기력하며 의욕이 없고, 불면증에 시달린다. 사람 만나기를 피하고 식욕이 떨어져 체중도 줄어든다. 자존감이 떨어지고 매사를 비관적·부정적으로 보게 된다.
최근 김승희 국회의원이 공개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우울증 환자는 78만2,037명으로 여성이 52만638명으로 남성(26만1,399명)보다 갑절 가량이 많다. 이 중 자신이 우울증에 걸린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2014년 발표한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도 만 30세 이상의 우울증 발생률이 3.8%였는데 여성이 5.6%로, 남성(1.9%)보다 월등히 높았다. 우울증 환자는 나이가 들거나 경제적으로 하위계층일수록 더 많았다.
우울증은 유전질환은 아니나 가족 등 가까운 사람이 걸리면 영향을 받게 된다. 톱스타였던 최진실씨가 2008년 우울증으로 생을 마감하자 동생인 최진영씨가 ‘모든 인생은 꿈이야…’ 라는 메모를 남긴 채 2010년 그 뒤를 따랐고, 2013년에는 최씨의 전 남편인 조성민씨도 목숨을 끊은 게 한 예이다.
보건복지부와 대한의학회가 운영하는 국가건강정보포털에 따르면 우울증의 원인은 지속적인 스트레스다. 가족의 죽음이나 불화, 이별, 외로움, 실직, 경제난, 걱정, 좌절감, 폭력 노출, 건강악화, 대인관계 문제, 날씨영향 등이 우울증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킬 수 있다. 암, 내분비계 질환, 뇌졸중 등도 영향을 미친다. 이 같은 스트레스로 인해 뇌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인 세로토닌이 줄어들며 신경세포의 기능이 떨어진다. 지금까지 우울증을 치료하는 항우울제가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을 개선하기 위해 세로토닌을 증가시키는 데 초점을 맞춰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신경세포에 비해 그 수가 매우 적지만 새로운 신경세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신경줄기세포의 중요성이 주목받고 있다. 우울증·치매·조현병 등 뇌 질환이 만성 스트레스로 인해 세포가 내부의 물질을 스스로 먹어치우며 자신을 보호하는 ‘오토파지(Autophagy)’에 의해 해마 신경줄기세포가 죽기 때문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온 것이다.
유성운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교수 연구팀이 쥐의 유전자 조작 등을 통해 실험한 결과 주요 오토파지 유전자 중의 하나인 ‘Atg7’을 없애면 신경줄기세포의 사멸을 방지해 뇌가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추가동물실험에서는 오토파지 반응의 신호를 알리는 ‘SGK3’ 유전자를 제거하거나 기능을 억제하면 신경줄기세포의 사멸을 막거나 줄일 수 있다는 것을 밝혀 새로운 치료표적을 발굴했다. 유 교수는 “세로토닌 등의 신경전달물질을 만들어내는 것은 뉴런 신경세포인데 그 원리는 알려져 있지 않다”며 “이번에 만성 스트레스에 시달리면 신경줄기세포가 자가포식 현상에 의해 죽어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우울증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게 가장 중요하다. 햇빛이 눈을 통해 뇌로 들어오면 세로토닌의 생산을 자극하게 돼 오전에 잠깐씩이라도 햇빛을 받으며 산책하는 것도 좋다. 주변 사람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으면 우울증 치료 효과가 배가된다. 무엇보다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고 항우울제를 복용해야 한다. 초기에 치료만 잘 받으면 완쾌율이 높지만 그렇지 못하면 재발 확률도 높고 더 길게 자주 우울증에 시달리게 된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