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경제소사]1908년 미국 최초 공식 비행

글렌 커티스 시험 비행

글렌 커티스의 미국 첫 공식 비행. /위키피디아

미국의 공식 조종사 면허 1호 소지자, 누구일까. 라이트 형제? 아니다. 면허번호 4호와 5호를 받았을 뿐이다. 주인공은 글렌 H 커티스. 미 항공클럽이 1911년 조종면허를 발급할 때 유자격자 5명이 알파벳 순서대로 번호를 나누다 보니 운 좋게 1번을 가졌다. 커티스는 다른 1호 기록도 많다. 미국 과학자협회가 상금을 건 1㎞ 이상 비행에 성공한 첫 조종사다. 커티스는 1908년 7월4일 고향인 뉴욕주 남서부의 해먼즈포트 포도농장 인근에서 1,550m를 비행해 대형 은 트로피와 상금 2,500달러(현재 가치 31만9,000달러)를 받았다.


커티스(당시 30세)의 이날 비행(사진)은 ‘북미 최초의 공식 비행’으로 남아 있다. 라이트 형제가 이보다 훨씬 전인 1903년 12월 인류 최초로 하늘을 날았지만 본 사람은 극소수다. 커티스는 미국 독립기념일에 맞춰 비행 날짜를 예고해 관람객을 모았다. 커티스는 ‘세상에서 가장 빨랐던 사람’으로도 불린다. 경륜(사이클) 선수였던 그는 1903년 개조한 모터사이클로 시속 103㎞라는 세계기록을 세웠다. 1906년에는 직접 설계 제작한 엔진을 장착한 모터사이클로 시속 219.4㎞라는 기록을 수립했고 이는 1930년까지 깨지지 않았다.

기계 제작을 좋아하는 모터사이클 선수였던 그가 본격적으로 비행기 사업에 뛰어든 계기는 전화 발명가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권유였다. 항공사를 설립하고 세 번째 만든 비행기가 각종 기록을 세우며 그는 유명인사로 떠올랐다. 수상기 개발에도 매진하고 미 해군의 항공모함 실험에도 깊은 영향을 끼쳤다. 1920년 회사를 정리하고 조기 은퇴해서도 그는 엔진 설계만큼은 급성맹장염으로 1930년 사망(52세)할 때까지 손에서 떼지 않았다. 그러나 무수한 족적을 남기고 길지 않은 세월을 살다 간 그의 인생 후반부 대부분을 차지한 사안은 따로 있다. 라이트 형제와 특허권 싸움.

미국은 물론 유럽 발명가들과도 끝없는 특허 소송전을 치렀던 라이트 형제는 커티스를 주적으로 여겼다. 법원은 양쪽에게 번갈아 승소 판결을 내렸고 싸움은 더욱 치열해졌다. 특허 소송전에 빠져 기술 개발을 게을리한 미국은 1차 세계대전에서 몇몇 수상기를 빼고는 프랑스와 영국·이탈리아 비행기를 면허 생산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다급해진 정부가 나서 각 기업 간 특허를 나누도록 강제하고서야 미국의 항공기 산업은 정상궤도에 올랐다. 미국은 왜 애써 커티스를 ‘1호’로 기억할까. 탐욕으로 망가지는 시장에 대한 경계가 깔려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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