뵈르글에서 발행한 지역 화폐. /위키피디아
1932년 7월5일, 오스트리아 서부의 소도시 ‘뵈르글’. 미하엘 운텔굳겐베겔 시장이 화폐사에 남을 단안을 내렸다. ‘노동 증명서’라는 이름의 지역 화폐를 발행한 것. 뵈르글시는 소도시의 화폐 발행이 불러올 위법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 이런 이름을 붙였다. 왜 작은 도시가 스스로 화폐를 발행했을까. 세계 대공황의 한파를 비켜갈 수 없었던 탓이다. 난방시설은 1930년 겨울부터 작동을 멈췄고 날이 갈수록 실업자가 넘쳐났다. 뵈르글시가 최초로 발행한 지역 화폐는 1,000실링. 얼마 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세금으로 5배가 넘은 돈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시청 직원들은 새파랗게 질렸다. 위조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시장은 ‘그것 보라’며 득의에 찬 미소를 지었다. 갈수록 실업이 줄고 시의 형편이 펴졌다. 어떤 마술이 일어난 것일까. 답은 ‘에이징 머니(aging money)’. 세월이 흐르면 부패하거나 기능을 상실하는 일반재처럼 돈에도 생명을 부여한 것이다. 뵈르글시는 노동 증명서의 가치를 시간의 경과에 따라 떨어뜨렸다. 감가율은 1개월에 1%. 액면가 100실링어치 노동 증명서를 발행일로부터 1개월 지나서 사용하면 99실링 가치만 인정했다. 사람들은 1년 뒤면 78실링으로 떨어질 지역 화폐를 되도록 빨리 쓰려고 애썼다. 소비가 늘어 생산을 자극하고 공장과 상점은 해고 계획을 접거나 아예 새로 뽑았다.
뵈르글 시장은 돈에서 축재 기능을 빼면 화폐유통 속도가 높아져 경기진작 효과가 일어난다는 생각을 실비오 게젤의 ‘자유화폐론(1906년)’에서 얻었다. 독일과 브라질에서 활동했던 사업가 겸 재야 경제학자인 게젤은 1890년 영국 자본의 아르헨티나 투기로 야기된 금융위기를 겪으며 ‘늙는 돈’의 개념을 만들었다. 게젤의 생각이 공황을 맞은 뵈르글시에서 꽃피는 것 같았다. 세수가 늘자 뵈르글시는 도로를 포장하고 스키점프대를 단장했으며 다리를 놓았다. 그러나 실험과 그 성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듬해 봄 오스트리아 정부의 금지로 실험은 끝났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호평에도 뇌리 속에서 사라졌던 자유 화폐에 대한 관심은 최근 비트코인과 맞물려 되살아나는 분위기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가 ‘화폐의 종말’에서 후한 점수를 줬다. 뵈르글의 반짝 성공은 자유 화폐 덕이라는 평가와 적극적인 재정확대 정책 때문이라는 해석이 공존한다. 과연 돈의 가치 저장 및 순증 기능을 빼면 경기가 좋아질까.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이 제어될 수 있는지 궁금하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