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울의 언어정담] 상처입은 마음의 창문을 두드리는 말들

작가
고통의 한계 높이는데만 골몰 말고
행복 느끼는 마지노선 설정도 필요
마음을 위로하는 아름다운 문장은
어떤 절망도 견뎌낼 수 있는 힘 줘

정여울 작가

영화 ‘쇼생크 탈출’을 다시 보다가 눈이 번쩍 뜨이는 문장을 발견했다. 앤디가 더 이상 감옥의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독방에서 격심한 우울의 늪에 빠져있자 ‘어젯밤에 앤디가 2미터짜리 밧줄을 빌려갔다’며 걱정하는 동료들에게 레드가 말한다. “누구에게나 한계는 있게 마련이지.(Everyone has breaking point.)” 그 문장을 듣는 순간 문득 가슴이 아파오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게 되었다. 내가 견딜 수 있는 고통의 한계는 어디일까. 내 마음이 부서질 듯 아픈 한계는 어디일까. 난 견딜 수 있어, 난 할 수 있어, 이렇게 외치며 내 한계를 높이는 데만 골몰해온 것은 아닐까. 한계를 높이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고통의 한계는 물론 행복의 한계까지 무한정으로 설정해 놓고 스스로를 괴롭혀 온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사실 ‘고통의 마지노선’뿐 아니라 ‘행복의 마지노선’도 헤아려보는 것이 좋다. ‘이 이상의 고통이 온다면 더 이상 견딜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할 때 그 고통으로부터 피할 방안을 강구해야 하고, ‘이만하면 괜찮다, 이만하면 참으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행복의 마지노선도 필요하다. 고통의 한계를 가늠해 보면 ‘나를 지킬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행복의 최저점을 정해 놓으면 ‘더 커다란 행복을 향한 지나친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 고통이 내 마음의 건강을 위협할 땐 주변의 도움을 청하고, ‘왜 나는 행복하지 않은 거지?’라고 스스로를 괴롭힐 땐 ‘내가 이미 가졌지만 충분히 감사하지 않고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해보는 것이 좋다.

건강한 마음챙김을 위한 또 하나의 방법은 감정의 미묘한 차이들을 또렷하게 구분해보는 것이다. 예컨대 고통과 절망을 구분하는 것,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구분하는 것, 슬픔과 비참함을 구분하는 것이다. 고통스럽지만 아직 절망스럽지 않은 순간이 있고, 스트레스는 심하지만 아직 치명적인 트라우마 단계는 아닐 때도 있고, 슬픔을 느끼지만 아직 비참함에까진 도달하지 않았을 때가 있다. 아픔을 과장하기보다는 아픔을 느끼는 순간 배울 수 있는 것에 집중해보는 것도 마음챙김에 도움이 된다. 영화 <더 파티The Party)>에서 샴페인을 터뜨리다가 갑자기 유리창이 깨져버려 망연자실한 사람들을 보고 주인공 중 한 명이 이렇게 말한다. “유리창이 깨진 거지 영혼이 부서진 것은 아니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도 안심이 되었다. 내 상황도 그런 것 같았다. 무언가 내 마음 속에서 부서져버린 느낌, 깨져버린 느낌이 들 때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영혼의 집이 부서진 것은 아니다. 힘든 일이 생긴 것이지, 반드시 절망해야 할 필연적인 사건이 터진 것은 아니다. 극복해야 할 어려운 일이 생긴 것뿐이지, 그것이 희망을 포기할 이유는 되지는 않는다. 나도 가끔은 트라우마에 굴복하기도 하고, 잊을 수 없는 상처 때문에 우울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지금 내 곁을 스쳐 지나가는 자그마한 행복의 햇살을 마음껏 만끽해보려 노력한다.

상처입은 내 마음의 문을 똑똑 두드리는 아름다운 문장을 찾아 나는 오늘도 책을 펼친다. 책만한 위로는 아직 찾지 못했으니까. 오늘은 류근 시인의 <함부로 사랑에 속아주는 버릇>을 펼친다. “내가 한없는 고통과 슬픔과 불행 때문에 울고 있을 때 이 세상 어딘가에 나를 위해 진심으로 애통해하며 기도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 그들의 순정과 진정이 결국 나를 살게 했다는 거. 나는 지금까지 그러한 힘에 의지해서 아주 사망하지 않고 여기까지 몹시도 비틀비틀 잘 흘러왔다.” “세상의 가장 낮은 자리에 누가 사는가. 힘없고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가. 사람의 가장 낮은 자리엔 무엇이 사는가. 서럽고 외롭고 그리운 마음들이 사는가. 슬퍼 말자. 언제나 가장 깊고, 가장 넓고, 가장 힘센 것들은 모두 다 낮은 자리에 산다. 그 위대한 힘들이 다 나의 이웃이고 동무다. 이보다 더 큰 빽이 어디 있으랴!” 이런 문장을 읽고 있으면, 나보다 더 큰 고통을 부여안고 비틀비틀 걸어가는 따스한 타인의 구부정한 뒷모습이 떠올라 가슴 시리다. 위로받으려고 책을 펼쳤는데, 오히려 내가 가서 누군가의 어깨를 꼭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된다. 아름다운 문장의 힘은 이토록 세다. 이런 따스한 문장을 벤치 삼아 마음이 걸터앉으면, 그 어떤 슬픔도, 그 어떤 절망도 다 견뎌낼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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