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일 디캠프(은행권청년창업재단) 센터장이 8일 서울 강남구 선릉센터에서 디데이를 알리는 책자를 들고 엄지를 치켜보이고 있다./이호재기자
‘빌딩 숲 속의 오아시스’로 사랑받는 서울 강남 선정릉 인근에는 미래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 될 스타트업을 키워내는 수원(水源)이 자리하고 있다. 바로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D.CAMP)다.
김홍일(53·사진) 디캠프 센터장은 8일 디캠프 선릉센터 집무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혁신적 파괴를 통해 기존 생태계를 변화시키는 창업 생태계를 꿈꾼다”며 “자본과 청년의 아이디어를 연결하는 플랫폼이자 보다 나은 인류의 삶으로 전진하는 전초기지가 되고자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 센터장이 기자와 마주앉은 자리는 선정릉이 보이는 아름다운 전망을 자랑하지만 푹신하고 고급스러운 ‘사장님 의자’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늦은 밤까지 회의하다 잠시 몸을 기대 쉴 수 있는 간이의자와 목을 축일 수 있는 생수병이 여러 개 놓여 있다. “창업 전선에 뛰어든 젊은 피들이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살길을 도모하는 가운데 멘턴(Mentor+Intern, 멘토이자 동시에 인턴)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거듭 강조하던 그의 말 그대로였다.
오랜 기간 금융권에서 잔뼈가 굵은 김 센터장은 지난해 이곳에 둥지를 틀며 본격적으로 ‘창업계’와 마주했다. 디캠프는 지난 2012년 전국은행연합회 소속 18개 금융기관이 청년세대의 창업지원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5,000억원을 출연해 만든 곳이다. 김 센터장은 디캠프가 아직 아이디어 수준에 머물고 있던 시절 초대 이사장인 박병원 전국은행연합회장 등과 의견을 나누며 현재의 디캠프가 탄생하는 데 힘을 보탰었다. 그것이 인연이 돼 이나리 초대 센터장(현 헤이조이스 대표), 김광현 제2대 센터장(현 창업진흥원장)에 이어 ‘창업 생태계의 중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된 것이다. 은행 10년, 증권사 10년, 그리고 자산운용사와 보험사 등에서 또 다른 10년을 보낸 전형적인 ‘금융맨’ 김 센터장은 신용을 창출하고 연결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곳에서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스타트업의 보육과 투자·지원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디캠프는 설립 이래 약 7년간 111개사에 112억원을 직접 투자했을 뿐 아니라 총 136개사(개포·선릉센터)가 머무는 업무공간으로 기능해왔다. 또 초기 스타트업을 공공기관과 대기업 등과 연결하는 지원 역할도 충실히 해내며 같은 기간 55개사에 1,181억원의 후속투자 유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재단법인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명실상부한 국내 유력 액셀러레이터(AC)라고 일컫기에도 손색이 없다. 간접투자에서는 출자한 펀드 15개를 바탕으로 총 7,277억원을 1,650개 기업에 투자하며 국내 창업 생태계를 기초부터 다지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김홍일 은행권청년재단(디캠프) 센터장./이호재기자
그는 이처럼 디캠프가 단기간에 자리를 잡고 국내 창업 생태계의 핵심플레이어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실질적인 콘텐츠를 중심으로 한 플랫폼 구축”을 꼽으며 “부임 이후 ‘허브’로서의 디캠프의 기능을 더욱 살려 기존 산업 생태계와 스타트업 간 연결을 더욱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이토록 ‘연결의 힘’에 방점을 찍는 것은 국내외 산업계와 유기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하는 것이 창업 생태계가 살아남을 수 있는 필수조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자본과 아이디어를 연결하는 디캠프의 주요 행사인 ‘디데이’는 ‘소비자에게 매력적인 기업을 찾는다’는 기본 목적에 충실하면서도 매달 새로운 기업이나 기관과 협업하며 창업 생태계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올해는 이지스와 특허청, IFC, 스마트스터디, 서울대 의대 등 다양한 곳들과 손잡고 그들이 요구하는 문제 해결법을 충실히 마련하는 스타트업을 최종적으로 가려낸다. 디데이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기업은 통상 1회당 5곳. 20대1의 경쟁률을 뚫어야만 기업소개(IR) 기회를 얻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디데이를 통해 디캠프에 입주했거나 직간접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의 생존율은 86.4%에 달한다. 이는 국내 평균인 38.2%,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57.2% 대비 눈에 띄게 높은 성과다. 일자리 역시 입주·투자 기업 평균 6.7개가 늘며 재단 설립 목적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그럼에도 김 센터장은 아직 디캠프가 가야 할 곳이 멀다고 말한다.
“디캠프는 가야 할 길이 아직도 멉니다. 창업 생태계와 완전히 관계가 없는 일반인 외에 창업가들 사이에서도 디캠프를 모르는 이들이 꽤 있다고 해요. 우리가 ‘넘버원’이라고 외치는 순간, 우리는 죽는 겁니다.”
국내 창업 생태계를 품어내는 곳은 디캠프 외에도 여러 군데가 있다. 구글캠퍼스, 아산재단의 마루180, 서울산업진흥원(SBA)의 서울창업허브 등 시작은 디캠프보다 늦었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스타트업 보육과 지원을 수행하는 기관들이 지난 5~6년간 잇따라 생겨나며 디캠프가 이들과 함께 걷는 길이 훨씬 넓어진 것도 사실이다.
김 센터장은 “디캠프는 혁신과 창업, 일자리, 청년이라는 주요 키워드를 맞출 수 있는 어느 곳과도 함께할 수 있는 개방성이 특징”이라며 “대기업의 스타트업 투자라면 당장 핵심성과지표(KPI)를 설정할 수도, 정부 계열의 기관이라면 정책적 목적이 있겠지만 순수 민간 재단이기에 그들과는 조금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김홍일 은행권청년재단(디캠프) 센터장./이호재기자
하지만 드넓은 창업 생태계가 변화하기 위해서는 디캠프의 힘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정부,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창업 친화적인 곳으로 바뀌어야 디캠프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창업을 통한 청년 일자리 창출’이 순탄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제2의 벤처 붐은 돈으로 이룰 수 있는 목표가 아니며 유니콘은 시장, 곧 소비자가 만들어내는 것”이라며 창업 지원을 부르짖는 곳들이 소비자와 스타트업을 연결하는 본연의 역할에 더욱 충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유니콘기업이 나오려면 오랜 기간 생존하는 것이 선결 조건인데 인위적으로 단축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라며 “결국 창업가들이 존경을 받는 사회가 돼야만 창업 생태계도 활발해진다”고 거듭 강조했다.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취업한다고 해도 정년이 보장되지 않는 이 시대에 창업이 개개인의 인생에 소중한 경험이자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다 많은 이들이 깨달았으면 한다는 것도 그의 바람이었다.
“디캠프에 처음 왔을 때 실패할 수도 있는 불확실한 일에 뛰어들라고 독려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해 깊은 고민을 했다”는 김 센터장은 “실패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도전해보라고 독려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젊은이들을 위한 조언이라는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설령 창업이 뜻대로 되지 않아 실패하더라도 그것은 이후의 삶에 긍정적인 바탕이 되며 인생의 패배가 아닌 오히려 성공으로 가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창업 생태계의 성장과 확장을 막아서는 ‘규제’에 대해서도 사회 전반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 세계 모든 기업가는 규제를 적용받는 대상입니다. 어느 한 사람이 이익을 독식하거나 어느 한 제품이 시장을 휩쓸면 사회는 그것을 부정하고 다변화하려고 합니다. 물론 독점에 대한 시장의 견제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유독 창업가를 도덕적인 기준으로 재단하며 경제의 논리가 아닌 기존 관념의 틀 안에서 판단하려고 합니다. 그런 문화 속에서는 절대로 혁신적인 파괴가 나올 수 없습니다. 창업 생태계를 꽃피우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처절하게 변해야 합니다.”
/이수민기자 noenemy@sedaily.comT사진=이호재기자
He is…
△1966년 대구 △1991년 경북대 사법학과 졸업 △1991~2001년 한국산업은행 근무 △2001~2008년 네덜란드 ABN-AMRO은행 홍콩지점 전무이사 △2008년 미국 리먼브러더스 홍콩지점 전무이사 △2008~2010년 일본 노무라증권 홍콩지점·서울지점 전무이사 △2011~2013년 아이디어브릿지자산운용 대표이사 △2013~2014년 IBK 자산운용 부사장 및 대표이사 대행 △2014~2017년 우체국금융개발원 원장 △2018년~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