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엽 민주평화당 원내대표
문재인 정권의 핵심인사 몇몇이 ‘성장은 그동안 할 만큼 했으니 이제는 분배할 때’라고 열을 올리더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게 과연 우리 경제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 얘기일까. 결코 아니다. 그 얘기는 진보진영이 최고의 덕목으로 내세우는 ‘사회적 약자의 보호 혹은 배려’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 뻔하다. 세계사가 그런 사실을 이미 충분히 증명했다.
그 이유는 또 무엇일까. 성장률이 낮아져 경기 부진이 장기화하거나 경기 하강이 빠르게 진행될 때는 해고를 당해도 못사는 사람부터 당하고 사업이 망해도 영세업체부터 망하기 때문이다. 흔히 최고의 복지라고 일컬어지는 일자리 창출은 경기 하강이 빨라지거나 경기 부진이 장기화하면 거의 이뤄지지 않거나 오히려 줄어들고 설령 증가하더라도 임시직이거나 시간제 아르바이트 일자리만 증가함으로써 고용구조가 심각하게 악화하고 만다. 과거 우리 경제가 고도성장을 지속할 때는 양극화나 빈부격차라는 얘기가 나오지 않았다. 당시에는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라는 용어조차 없었다. 지금 취업난이 심화하고 고용구조가 악화하는 것은 경기 부진의 장기화로 빚어진 일일 따름이다.
실제로 성장과 분배는 서로 분리할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성장 없이는 분배할 수 없고 분배 없이는 성장할 수도 없다. 세계사를 들여다보면 ‘성장 없는 분배’는 극심한 경제난 혹은 경제 파국으로 진행되고는 했다. 지난 1990년대 초에 소련이 붕괴되고 동유럽권이 시장경제로 변신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1990년대 중반쯤에 사민주의 열풍에 휩싸였던 서유럽의 여러 나라가 2000년대에 극적인 변신을 한 것도 대표 사례에 속한다. 반면 ‘분배 없는 성장’이 무한질주를 초래해 경제 파국으로 치달았던 것도 세계사의 경험이다. 대부분의 경제 전문가는 1930년대 세계 대공황을 대표 사례로 꼽고는 한다.
일부 성장 우선주의자들은 ‘분배 없이는 성장할 수 없다’는 점에 강한 거부감을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세계 대공황은 ‘시장의 실패’가 아닌 ‘정책의 실패가 빚은 재앙’이라는 사실을 최근에 경제학계가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국가 경제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소득계층별로 소비성향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소득 상위계층으로 소득이 집중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소득 5분위 중에서 최상위계층의 소비성향은 30% 남짓에 불과하므로 이들에게 소득이 집중되면 유효수요가 부족해지고 그러면 경제성장은 뒷걸음치지 않을 수 없다.
반면 최하위계층의 소비성향은 90%를 훌쩍 넘어선다. 따라서 분배정책이 적절히 시행됨으로써 못사는 사람의 소득이 증가하면 그만큼 유효수요가 풍족해짐으로써 성장의 지속성이 확보된다. 다만 주의할 점은 분배가 성장의 수단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분배는 수요 확대를 통해 성장을 뒷받침하는데 수요 부문에서는 생산성 체감의 법칙이 작동함으로써 성장잠재력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경제성장이 모든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라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분배는 목적이고 성장은 수단인 셈이다. 성장이 있어야 분배가 가능해지고 반드시 분배가 뒤따라야 지속적 성장이 가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