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6월 26일 약혼녀 부친상 조문을 위해 입국 금지조치가 일시 해제된 유승준이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병역기피로 17년간 대한민국 땅을 밟을 수 없었던 가수 유승준(43)이 대법원 판결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온라인상에서는 ‘판결이 잘못됐다’는 반응이 주를 이루며 식지 않은 분노가 쏟아지고 있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1일 유씨가 주 로스앤젤레스(LA) 한국 총영사관을 상대로 낸 ‘사증(비자)발급 거부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유승준의 승소 요인은 재외동포의 권리 보호를 강화한 사증(비자) 발급을 신청한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유승준 법률대리인에 따르면 그는 2015년 관광비자 대신 재외동포(F-4) 자격 비자발급을 신청했다. 유승준이 병역의무 해제 연령(38세)이 된 해였다.
재외동포 자격 비자를 신청한 이유는 우리나라로 입국해 체류하려는 재외동포에 대해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재외동포법의 취지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유승준이 비자발급을 신청할 당시 재외동포법은 병역기피 목적으로 국적을 상실한 자라도 병역의무가 해제되는 연령인 38세가 된 때에는 대한민국의 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 외교 관계 등 대한민국의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해당하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체류자격을 부여하도록 했다.
재외동포 자격 비자를 발급받게 되면 최장 3년간 국내에 체류할 수 있고, 사회질서나 경제안정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자유로운 경제활동도 가능하다.
유승준 측 대리인은 “관광비자 발급은 기대하지 않았기에 처음부터 재외동포 자격 비자발급을 신청했다”며 “영사관이 발급을 거부하자 소송을 내고 법원에 재외동포법의 취지를 위주로 발급 거부의 위법성을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유승준 측의 기대대로 영사관의 비자발급 거부가 적법한 행정절차를 거치지 않아 절차상 하자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또 발급 여부를 다시 판단할 때는 재외동포법 취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의 판단은 유승준의 재외동포 자격 비자를 곧바로 발급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파기환송심을 거쳐 승소가 확정되더라도 영사관의 비자발급 거부 처분만 취소된다. 그가 비자를 발급받으려면 영사관의 판단을 다시 받아야 한다.
온라인상에서는 이번 판결의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된 후에도 재판부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17년간 문을 굳게 닫았던 빗장이 열릴 가능성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국민적 분노가 다시 끓어오르고 있다. 일부 네티즌은 “유승준의 입국을 허용하려면 내 군생활과 예비군 훈련에 대해 제대로 보상하라”며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입국을 거부하라’는 내용의 청원이 올라와 순식간에 2천여명의 동의를 얻었다.
이 가운데 유승준은 공식입장을 내고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그동안 유승준과 가족들의 가슴 깊은 한을 풀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돼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앞으로 사회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비난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평생 반성하는 자세로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아래는 유승준이 법률대리인을 통해 밝힌 공식입장
유승준과 가족들은 이번 대법원의 파기 환송 판결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승준은 2002년 2월 1일 입국이 거부된 이후로 17년 넘게 입국이 거부되어 왔습니다.
유승준은 자신이 태어나서 중학교까지 자랐던, 그리고 모든 생활터전이 있었던 모국에 17년 넘게 돌아오지 못하고 외국을 전전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고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간절하고 절절한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을 계기로 그 동안 유승준과 가족들에게 가슴 속 깊이 맺혔던 한을 풀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입니다.
한편, 이번 대법원 판결에 깊이 감사하며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유승준이 그 동안 사회에 심려를 끼친 부분과 비난에 대해서는 더욱 깊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사회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대중들의 비난의 의미를 항상 되새기면서 평생동안 반성하는 자세로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최상진기자 csj8453@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