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 데자키 감독.
영화 ‘주전장’의 스틸컷.
영화 ‘주전장’의 스틸컷.
“일본군 위안부 이슈는 국가 간의 현안이 아니라 인권의 문제입니다.”
오는 25일 국내 개봉하는 위안부 다큐멘터리 ‘주전장(主戰場)’을 연출한 미키 데자키(36·사진) 감독은 최근 본지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애국주의나 민족주의 같은 프레임으로는 결코 위안부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주전장’은 일본계 미국인인 감독이 한국·일본·미국을 넘나드는 취재를 통해 일본 극우 인사의 엉터리 같은 역사인식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영화다. 제목은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을 ‘핵심전장(main battleground)’으로 삼고 위안부 이슈에 대한 선전전을 펼치는 극우세력의 행태에서 가져왔다.
감독은 원래 위안부 문제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으나 관련 기사를 쓴 일본인 기자가 우익들에게 무차별적인 인신공격을 당하는 모습을 본 뒤 호기심이 일어 조사를 시작했다. 영화는 극우세력뿐 아니라 위안부 피해자를 지원하는 시민단체, 학자 등 30명이 넘는 인사들의 다양한 주장을 실어나르며 관객들이 스스로 성찰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데자키 감독은 “위안부 현안에 대해 잘 모르는 한일 양국의 젊은 세대들도 흥미를 갖고 접근하기를 바랐다”며 “여러 사람을 인터뷰한 다음 주장과 반론, 그에 대한 재반박을 쉴 새 없이 보여주는 방식으로 연출한 것도 영화의 긴박감을 높이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주전장’에 나오는 극우 인사들은 “위안부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실상은 매춘부였다” “일본 정부가 강제연행을 했다는 증거가 없다” 등의 주장을 편다. 지난 4월 일본에서 개봉했을 당시 이들 인사는 “학술연구를 위한 인터뷰라는 감독의 말에 속아 영화에 출연하게 됐다”며 상영 중지를 요청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데자키 감독은 “그저 위안부 현안을 둘러싼 다양한 정치적 입장을 담고 싶었다”며 “그것은 창작자로서의 순수한 호기심이었다”고 고백했다. 또 촬영 과정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상업영화로 극장에서 상영될 가능성이 있다고 명시한 승낙서를 출연자들과 주고받았다”고 반박했다. ‘주전장’은 이처럼 영화 안팎으로 화제를 낳으며 다큐멘터리 작품으로는 이례적으로 3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기도 했다.
데자키 감독은 한일 양국이 해묵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용어의 의미에 대한 공감대부터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성노예’ ‘강제연행’과 같은 단어가 지니는 국제법적 정의에 대해 합의해야 양국이 같은 선상에 서서 대화를 시작하는 토대를 구축할 수 있다”며 “그렇지 않으면 두 나라의 입장은 의견 불일치와 오해 속에 영원히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치인이든 일반 국민이든 상대를 헐뜯는 극단적인 수사에서 벗어나 역사의 배경과 맥락을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며 “시야를 좁게 한정하는 국수주의의 가치관에 사로잡혀 있으면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꼬집었다.
데자키 감독은 “위안부 문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첨예한 이슈인 만큼 한국 관객을 만나는 일은 무척 설렌다”며 “위안부를 소재로 삼은 기존의 영화들과 다른 점이 많지만 열린 마음으로 접근하면 누구나 쉽고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사진제공=시네마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