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아이] '쓰레기와의 전쟁' 나선 習, 승전보 울리나

■中 '쓰레기 분리배출' 25년만에 재시행
미중 무역전쟁 확전 상황에서도
習 "환경 보호해 녹색성장" 지시
공무원 대대적 단속·처벌 나서
내년 베이징 등 46개 도시로 확대
시민들 전체주의식 책임 회피에
지방정부 '규제=성장 발목' 인식
習 의욕에도 제도 정착 쉽잖을 듯

한 중국 여성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상하이 음식점에서 사용한 비닐을 분리해 버리고 있다. /상하이=EPA연합뉴스

이달 들어 중국 상하이에서는 쓰레기 분리배출·수거와의 사투가 시작됐다. 상하이 시민들은 지난 1일부터 시가 제정한 ‘생활쓰레기 관리조례’에 따라 쓰레기를 △재활용 가능 △유해물질 △젖은 쓰레기(음식물) △마른 쓰레기 등 네 종류로 구분해 내놓아야 하는데 처음 하는 분리배출이 쉽지는 않다. 정책 시행 후 2주 동안 시 공무원 2만여명이 매일같이 주택가와 상가 등을 돌며 대대적인 점검을 벌이는데 하루 벌금 부과 건수가 30여건에 달한다. 규정 위반에 부과되는 벌금은 개인의 경우 50∼200위안(약 8,600∼3만4,000원), 기관·업체는 최고 5만위안(약 856만원)에 달한다. 한 시민은 “유해물질을 ‘마른 쓰레기’ 통에 넣었다는데 사정사정해서 겨우 ‘경고’ 조치에 그쳤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상하이발 ‘쓰레기 분리수거’ 광풍이 중국 전역에 휘몰아치고 있다. 중국 중앙정부는 올 7월 상하이시가 쓰레기 관련 조례를 개정해 분리배출·수거를 강제하게 한 데 이어 내년까지 베이징 등 전국 주요 도시로도 해당 정책을 확대할 방침이다. 지금까지 경제성장을 목표로 환경 문제를 등한시했던 중국이 본격적인 쓰레기 관리에 나선 것이다.

중국이 생활쓰레기 분리배출·수거를 제도로 도입한 것은 이미 25년 전의 일이다. 도입시기만 놓고 보면 한국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중국 정부는 1995년 ‘중화인민공화국 고체폐기물 환경오염방지법’을 제정 시행하면서 생활쓰레기의 분리수거와 재활용을 규정했다. 2000년에는 상하이와 함께 베이징·항저우·광저우·선전·샤먼 등 8곳이 분리수거 시행 시범도시로 선정됐고 2008년 올림픽을 치르면서 국민적 관심도 고조됐다. 하지만 여전히 관련 규정은 권고사항에 머물렀고 처벌조항도 없었다.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베이징시 왕징 아파트 단지에는 분리수거통이 설치돼 있지만 이용하는 사람은 없다. 음식물쓰레기와 재활용품은 여전히 한 곳에 뒤섞여 내버려진다.

생활쓰레기 분리와 위반자에 대한 벌칙조항이 있는 조례를 처음 만든 도시는 2014년 광둥성 광저우시다. 하지만 당시 획기적이라고 여겨진 이 조례 역시 흐지부지됐다. 처벌조항은 있었지만 지방정부가 적극적인 단속을 하지 않으면서 시민들의 참여도 저조해졌다.


하지만 시진핑 정부 들어 상황이 바뀌었다. 정부가 ‘아름다운 중국(美麗中國)’이라는 구호 아래 생태환경을 강조하면서 쓰레기 분리배출·수거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것이다. 특히 2016년 12월 시 주석이 중앙경제지도소조 회의에서 “중국 인민들이 쓰레기 분리수거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인식해 습관을 들이게 해야 한다”고 분리수거에 관해 직접 언급한 뒤 정부는 전국적인 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6월4일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1면 톱 기사로 전날 시 주석이 “녹색성장을 위해서는 쓰레기 분리를 잘해야 한다”는 지시를 게재하며 대대적인 운동이 시작될 것임을 시사했다. 당시 미중 무역전쟁이 전면전으로 확대될 기로에 놓인 상황에서도 국내 정치적으로 불리할 결단을 내린 것이다. 그 후 7월1일부터 중국 최대 도시 상하이에서는 본격적인 강제 분리배출·수거가 시작됐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중국이 국가 이미지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기회를 맞았다”고 평가했다.

그동안 중국에서 생활쓰레기 분리가 잘 안 된 것은 정부와 국민들의 복합적인 무관심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시민의식이 성숙되지 않은 주민들 입장에서는 쓰레기를 일일이 분리하는 것이 귀찮은데다 환경보호는 국가의 일이라는 전체주의식 책임회피 의식이 만연하다. 정책을 집행해야 하는 지방정부들의 안일함도 제도화를 막은 중요한 요인이다. 경제성장을 지상 목표로 삼는 지방정부 입장에서는 환경보호가 걸림돌이라는 인식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알리바바·징둥 등 온라인상거래의 폭발적 증가로 내수 소비가 확대되면서 포장지 쓰레기도 덩달아 급증했다. 쓰레기를 규제할 경우 소비가 줄어들 것을 우려한 당국이 적당히 쓰레기를 모아 땅에 묻거나 태우는 것이 지금까지의 처리 방식이었다.

과거 20여년을 지방에서 근무한 시 주석은 이런 문제를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지방정부의 업무인 쓰레기 분리수거에 중국 중앙정부가 직접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시 주석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환경당국은 상하이에 이어 베이징 등 46개 주요 도시에서 오는 2020년까지 강력한 처벌조항이 들어간 쓰레기 분리수거 시스템을 시범 운행한 후 2025년까지 전국적인 시스템 구축을 완료하기로 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상하이의 실험에 대해 “과거와 달리 중앙정부 및 최고지도자가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 성공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졌다”고 전했다.

다만 시진핑의 강력한 의지와 환경보호의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쓰레기 분리배출·수거가 각 지역에서 제대로 정착할지는 의문이다. 중국 관영매체들은 부족한 시민의식을 탓하지만 서방 언론들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시스템을 꼬집는다. 중국 생태환경부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주요 202개 도시의 총 생활쓰레기 배출량은 2억194만톤이다. 앞서 2013년 조사에서는 261개 도시에서 총 1억6,148만톤이 배출된 것으로 집계됐다. 2013년보다 2017년에 집계 도시 수가 줄어든 것은 지방정부가 불리한 정보를 중앙정부에 보고하지 않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상하이의 한 시민은 “정작 분리배출된 쓰레기를 수거차는 모두 한데 모아서 가져가고 있다”고 전했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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