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4류정치 뒷감당 언제까지 기업에 떠넘길 건가

일본의 수출 보복이 시작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정부가 뾰족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면서 기업들의 속만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도 버거운데 일본의 수출규제까지 겹치면서 기업 경영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시계 제로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기업들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미중 무역전쟁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지만 일본의 수출규제는 따지고 보면 정치가 무능한 탓에 발생한 일이다. 일본 정부가 한국의 강제징용 배상 요구에 보복하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해온 것과 달리 우리 정부는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동분서주하기 바빴다. 결국 짐은 기업들이 다 떠안게 됐다. 정치로 풀어야 할 배상 문제를 정치로 풀지 못했기 때문에 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무능한 정치가 기업의 발목을 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6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이후 중국의 한한령(限韓令)과 경제 보복 조치로 우리 기업이 막대한 피해를 본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롯데그룹은 사드 배치 장소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중국 내 롯데마트 영업을 제한당했고 영화 산업과 뷰티·패션 등 다른 산업도 타격을 입었지만 정부는 별다른 대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노동계 등 이해관계자들의 눈치를 보느라 경제활성화법 처리는 미루고 기업을 옥죄는 규제강화법안을 쏟아내고 있는 것도 문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된 고용·노동 관련 법안 890개 가운데 절반이 규제강화법이라고 한다.

일본의 수출규제 여파로 급기야 삼성전자·현대자동차 등 주요 기업들이 하반기 경영전략을 전면 수정하고 있다. 서울경제 12일자 보도에 따르면 일본을 방문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귀국 직후 반도체·디스플레이 사장단을 소집해 전략회의를 열기로 했다. 현대차는 중국 시장 회복을 위해 규모의 경제에서 벗어나 수요에 맞춘 생산으로 전략을 수정한다. 조선·기계·건설 등 다른 업종의 기업들도 생산량과 실적 등 경영 목표치를 낮추고 있다. 무능한 정치의 뒷감당을 언제까지 기업들이 해야 하는가. 정치로 인해 기업과 경제가 더 이상 골병들지 않도록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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