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법무부와 국토안보부는 이날 공동성명을 통해 중미 이민자들의 망명 신청을 대폭 제한하는 새로운 규정(IFR)을 발표했다. 이 조치는 과테말라·온두라스·엘살바도르 등 중미 3국의 캐러밴이 경유국에 먼저 망명을 신청하도록 규정한 것으로, 육로로 멕시코를 거쳐 미 남부 국경에서 이뤄지는 망명 신청을 사실상 차단하는 것이다. 강화된 망명 규정은 당장 16일부터 시행된다.
윌리엄 바 법무장관은 “미국은 관대하지만 남쪽 국경의 수십만 외국인을 체포하고 처리하는 부담으로 완전히 압도당한 상태”라며 “새 규정이 시행되면 미국에 이민 오려는 이들이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케빈 매컬리넌 국토장관 대행도 “미국으로 이민을 촉발하는 중요한 요인을 줄이려는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민자가 최소 1개국에 망명을 요청했다가 거부당했다는 증빙이 있어야 미국에 망명을 신청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치로 미국으로 향하던 중미 이민자들을 고스란히 떠안게 될 멕시코는 일방적 조치를 결코 수용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마르셀로 에브라르드 멕시코 외교장관은 이날 “망명자 접근을 제한하는 (미국의) 어떤 일방 조치에도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멕시코가 미국이 거부한 망명 신청자들을 위한 쓰레기 처리장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맞섰다.
멕시코 정부는 아울러 미국이 요구하는 ‘안전한 제3국’ 협정을 체결하려면 의회 승인이 필요하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안전한 제3국은 중미 이민자들이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망명 신청을 한 뒤 심사 결과를 기다리는 것을 말한다. 중미 이민자의 또 다른 경유지인 과테말라 역시 전날 지미 모랄레스 대통령의 방미 계획을 연기하면서 “망명 신청자를 위한 제3국 협정에 서명할 계획이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재선을 의식해 반이민정책을 강화하고 민주당의 여성 진보 하원 의원 4인에 대한 “원래 나라로 돌아가라” 등의 인종차별적 발언을 거듭하고 나서자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혐오 발언을 규탄하는 하원 결의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노벨상을 수상한 저명한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도 이날 NYT 칼럼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백인우월주의자로서의 본질이 드러났다고 혹평하면서 이번 발언은 트럼프 개인이 아니라 그가 속한 공화당 전체에 관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