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교칼럼] 일본의 전략물자 의혹 자충수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日 수출규제 정당화위해 억지 주장
관리방침·비교 설명자료 제작·배포
국제기구 통한 검증 국제여론 조성
무책임한 의혹제기 못하게 막아야


일본의 한국 때리기가 위험수위를 넘고 있다. 일본 모 방송사는 지난 2015년부터 올 3월까지 전략물자 불법수출 적발 건수가 156건이고 우리나라 전략물자 수출통제체계를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한 고위인사들은 일본산 불화수소가 북한으로 밀수출돼 맹독성 신경가스인 사린가스 제조에 쓰이고 있다고까지 말했다.

반도체 생산과정에 필요한 에칭가스인 일본산 불화수소가 북한으로 유입돼 사린가스로 전용됐다는 점을 들어 우리나라의 전략물자 관리에 허점이 있는 것으로 여론화하고 있는 것이다. 1995년 옴진리교가 사린가스를 도쿄 지하철에 뿌려 13명이 사망하고 6,200여명 부상했다. 사린가스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일본 유권자를 의식한 발언이자 수출규제 명분으로 안보상 예외를 거론해온 자신들의 논리로 정당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오히려 일본에서 북한으로 밀수출된 핵심부품이 많고 우리의 전략물자 관리에 특별히 문제될 게 없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근거도 없는 일본의 주장에 대한 우리나라의 대응은 논리적이었다. 불화수소로 사린가스를 제조할 수 있지만 치약에도 쓰이는 구하기 쉬운 소재 대신 일본만이 생산할 수 있는 99.999% 이상의 고순도 불화수소를 굳이 쓸 이유가 없다. 값도 비싸지만 다루기도 어렵다고 한다.

일본의 수출규제 논란이 전략물자 의혹으로 옮아가면서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분위기로 반전하고 있다. 신뢰 문제 차원에서 우리나라의 전략물자 관리에 대한 의혹을 아베가 제기했지만 전략물자가 북한으로 반출됐다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며 무리한 수출규제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12일 일본 경제산업성에서 개최된 수출규제 회의에서는 전략물자 관리에 대한 양국의 공방이 오갔다. 당초 국장급 회의를 기대했으나 과장급으로 축소시켰다. 일본 측은 전략물자 담당 과장 2명이, 우리나라는 전략물자 담당 과장과 일본과의 통상담당 과장이 참여했다. 창고 같은 허름한 공간에 ‘수출관리에 관한 사무적 설명회’라고 쓴 화이트보드를 세워놓아 한국에 대한 차가운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전략물자 관리가 허술한 한국이라고 몰아붙일 심산임을 보여줬다.

우리 측이 국제규정에 맞게 전략물자를 관리하고 있고 문제가 있다면 근거를 제시해야 하며 부당한 수출규제를 철회할 것을 요구하자 일본은 구체적인 해명 없이 다음달 수출허가과정에서 포괄적 승인 대상국가(화이트 리스트)에서 우리나라를 제외할 것임을 언급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대외무역법과 시행령에 정부의 허가를 받아 전략물자를 수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다자간 수출통제 전략물자 외에 대량파괴무기(WMD) 전용 우려 품목의 수출을 제한하는 ‘캐치올(Catch All)’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수출통제 실효성을 제고하기 위해 전략물자관리원(KOSTI)은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다만 매년 산업통상자원부가 해오던 일본과의 전략물자 관리 협의를 최근 2~3년 실시하지 않은 것은 아쉽다.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전략물자 관리에 대한 국제기구의 검증을 받자고 공식 제안한 것은 강제징용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국제중재위원회에 회부하자고 제안한 일본에 대응하는 방안으로 의의가 있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국제중재위 회부 제안에 부정적이고 우리나라의 국제기구 검증에 대해 일본은 사례가 없다는 점을 들어 사실상 거부하고 있다.

이번 전략물자 관리 부실 발언은 분명 일본의 무리한 자충수다. 우리나라로서는 일본의 무책임한 의혹 제기를 국제적으로 여론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일본이 또 다른 주장을 하지 못하도록 전략물자 관리 방침이나 실적 등을 일본을 포함한 다른 국가 사례와 비교 설명하는 자료를 만들어 세계적으로 배포해야 할 것이다. 국제기구의 검증에 일본이 참여하도록 국제적 여론을 조성하면서 국제기구와의 세미나 등을 통해 우리나라의 입장을 널리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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