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샌드박스' 규제 여전한데 자화자찬이라니

정부가 16일 ‘규제 샌드박스 시행 6개월 성과’라는 자료를 냈다. 올 1월부터 현재까지의 규제 샌드박스 추진 현황을 설명하는 내용인데 정부는 제도가 잘 정착되고 있다고 자평했다. 지금까지 혁신금융 관련 등 81건을 승인해 올해 연간 목표인 100건의 80%를 이미 달성했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패스트트랙 심사제도를 도입하는 등 빠른 심사를 통해 목표를 초과 달성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타냈다.


규제 샌드박스는 신산업·신기술 출시를 가로막는 불합리한 규제를 면제하거나 유예해주는 제도다. 1월17일 본격 시행에 들어가 그동안 금융·정보통신기술(ICT) 분야 등에서 규제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목표 80% 달성’ 등 자화자찬할 정도인지 의문이다. 현장에서는 여전히 체감도가 낮기 때문이다. 정부가 대표 사례로 꼽은 도심 내 수소충전소만 해도 그렇다. 현대차 탄천 충전소는 부지 문제로 무산될 위기이고 조건부 허가가 난 계동사옥 충전소는 아직 문화재청이 심의 중이라고 한다.

특히 카풀·숙박 등 공유경제와 원격의료 등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사안은 한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중국에서도 광범위하게 퍼진 원격진료 사업은 의사가 환자를 직접 진찰하도록 규정한 의료법에 가로막혀 있다. 인터넷은행의 증자를 어렵게 만드는 대주주 자격 심사 등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는 방치되고 있다. 블록체인 송금같이 혁신적 금융실험이나 진짜 풀어야 할 서비스는 여전히 규제 대상이다. 개인정보보호법과 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보호법 등 이른바 ‘개·망·신법’에 막혀 있는 게 현실이다. 샌드박스 제도가 변죽만 울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래서야 어떻게 혁신 서비스가 꽃을 피울 수 있겠는가. 규제 샌드박스가 건수 위주로 흐르지 않으려면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 방식으로 빨리 전환해야 한다. 중국이 스타트업에 대해 ‘선 허용, 후 규제’를 통해 유니콘을 대거 키워낸 것처럼 우리도 신산업이 자리 잡을 수 있는 길을 과감히 열어주기 바란다. 이제 규제혁신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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