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부촌 아파트에 고슴도치 수위가 있다. 무수한 책을 독파하고 레퀴엠을 들으며 네덜란드 정물화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수위. 그는 자신의 예술적인 식견과 감성을 철저히 숨기고 살아간다. 속물적이고 허세로 가득한 아파트에서 일하며 가시 속에 우아하고 눈부신 내면을 키워가는 이 별난 수위에 대한 장편소설은 프랑스에서 113주 연속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출판계의 일대 사건으로 기록됐다.
파리의 셰익스피어앤드컴퍼니 서점에 가면 벽에 이런 문장이 쓰여 있다. “낯선 사람을 냉대하지 말라. 변장한 천사일지도 모르니.” ‘고슴도치의 우아함’을 읽으면 이 도시 곳곳에서 요리하고 서빙하고 청소하고 운전하고 계산대를 지키며 먹고사는 이들이 품고 있을 저마다의 우아함에 대해 상상하게 된다. 꼭 책을 읽거나 예술을 향유하지 않아도, 정직한 노동으로 자신과 가족을 지키며 살아온 이의 내면에 단련된 힘과 빛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고슴도치 수위가 지키는 저속한 아파트에서 누군가 그에게 말한다. “우린 너무 가져서 아픈가 봐요.” 많이 가졌으나, 아픈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가진 게 없어도, 남들이 우러러보는 지위와 직업에 기대지 않아도 본디 우아한 사람이 있다.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