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아베 신조(오른쪽) 일본 총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서울경제DB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가 모든 중재안을 놓고 일본과 협의하겠다는 유연한 태도를 보인 직후 강공 일변도로 한국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던 일본 정부가 ‘신속한 수출허가’ 등 대한(對韓) 유화 메시지를 내놓으면서 한일관계의 엉킨 실타래가 풀릴지 주목된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18일 국가안보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를 주재하면서 부당한 수출규제 조치를 즉각 중단할 것과 외교적 해결을 위한 우리의 노력에 적극 호응해줄 것을 일본 정부에 촉구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피해자의 동의를 얻는 것을 전제로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 5당 대표와의 회동에서 과거 한일 간 위안부 합의를 예로 들며 “교훈을 얻을 부분이 있다. 양 정부 간 합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며 피해자들의 수용 가능성과 국민의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말해 외교적 해법을 강조했다. 다만 정 실장은 이 회동에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과 관련해 “지금은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으나 상황에 따라 재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강경 발언만을 쏟아내던 일본 정부도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와 관련해 군사 전용 우려가 없으면 수출허가를 내줄 방침이라며 다소 변화된 모습을 보이는 만큼 양국이 출구전략 마련을 준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NHK는 이날 “이번 조치(일본 정부의 한국 수출규제)로 수출하는 기업에 대한 청취 등도 실시돼 심사기간이 표준으로 90일 정도 걸리지만 경제산업성은 일본 기업과 한국 기업 양측의 관리체제가 적절하고 군사 전용의 우려가 없다는 것이 확인되면 신속하게 허가를 내줄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외교가에서는 우리 정부가 한일 갈등의 출구전략을 마련하기 위해 강제징용 배상 판결 문제와 관련해 강경론에서 유연한 입장으로 돌아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정부 측은 한일 기업이 자발적으로 기금을 조성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는 방안인 ‘1+1안’을 기본 토대로 협상안을 도출해낼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일본 정부가 지난달 19일 우리 정부의 1+1안을 거부한 만큼 우리 정부는 추가 방안을 검토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은 한일 기업이 소송 승소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고 그 외 피해자들에게 한국 정부가 보상하는 ‘1+1+α안’이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정부가 여러 가지 안을 고르는 게 아니고 2~3개 정도 선에서 장단점을 저울질하는 단계”라며 “조만간 정부의 안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앨리엇 엥겔 미국 하원 외교위원장./AP=연합뉴스
핵심 동맹국인 미 조야에서 한미일 삼각 협력을 강조하는 여론이 높아지는 만큼 미국의 중재도 한일관계에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전날 데이비드 스틸웰 신임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한일 갈등에 관여하겠다는 뜻을 밝힌 데 이어 미국 하원에서도 한미일 삼각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결의안이 17일(현지시간) 통과됐다.
매슈 포틴저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이 이번주 말 한국과 일본을 모두 방문하는 데 이어 존 볼턴 NSC 보좌관도 다음주 한국과 일본을 찾을 것으로 보여 미국이 한일 갈등 중재 방안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일본 내부 분위기도 한일 간 확전을 반기는 분위기가 아니고, 특히 미국이 한일 갈등이 커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한 단계 더 나아가기에는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우인·노현섭·양지윤기자 wi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