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경제학자들은 우리 경제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로 가계부채를 꼽곤 한다. 문재인 정부도 그 억제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행 중이다. 그런데 가계부채가 진짜로 심각한 문제일까. 만약 진짜로 심각한 문제라면, 왜 세계적으로 소득수준이 높고 경제가 안정적인 나라들은 가계부채 비율이 높을까? 반면에 가계부채 비율이 낮은 나라들은 소득수준이 낮거나 경제가 불안정하고 성장률은 정체되어 있다. 예를 들어 덴마크는 145%, 스위스·네덜란드·스웨덴은 130%를 넘고, 미국도 120%를 넘는 반면에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그리스는 40%대, 프랑스와 이탈리아도 50%대이며, 4반세기 이상 0%대 평균성장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본은 60%대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가계부채의 특성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은행 등 금융기관의 입장에서 보면 가계에 대출해주는 것보다는 기업에 대출해주는 것이 수익성도 높고 사후관리 역시 쉽다. 예를 들어 서너 개의 기업에 1천억원을 대출해주면 1명의 은행원으로도 충분하지만, 1억원씩 1천가구에 대출해주면 수십명이 필요하다. 대출이 부실화됐을 때도 사후처리는 기업의 경우가 훨씬 단순하다. 그런데 왜 은행 등은 가계대출을 크게 늘리고 있을까. 당연히 기업의 대출수요가 경기부진의 장기화로 인해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저축 등의 입금은 꾸준히 증가하는데 기업의 대출수요가 거의 사라졌으니 가계부채에서 그 활로를 찾을 수밖에 없다.
가계부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노무현 정권의 경제정책 실패를 초래해 우리나라 연평균 성장률을 4.7%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실제로 노무현 정권은 집권 직후 가계부채 문제의 해결을 최우선적인 국정과제로 삼았다. 2003년의 가계신용(가계부채의 공식용어) 증가율을 1.9%로 억제했고, 성장률은 전년도의 7.4%에서 2.9%로 뚝 떨어졌다. 당시의 경제여건은 수출증가율이 두 자릿수에 이를 정도로 비교적 양호했다. 한편 2006년에는 가계신용이 12%에 가깝게 증가하자 성장률은 그 전년도의 3.9%에서 5.5%로 다소 회복됐다.
당시 GDP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55%에 불과해 OECD 평균수준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계대출을 극단적으로 억제했고, 그 바람에 경기는 급격히 하강했다. 그래서 기업 투자가 빠르게 감소했고, 시중에는 유동자금이 넘쳐났다. 그 자금이 찾아갈 곳은 부동산 시장밖에 없었다. 부동산 경기가 급상승하면서 부동산 매입을 위한 가계대출이 크게 증가했고, 가계부채 비율은 2013년에 70%를 넘어섰다. 가계부채를 축소하기 위해 가계대출을 억제했던 정책이 오히려 가계부채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든 꼴이었다.
그럼 가계신용을 억제하면 왜 경기는 부진해질까. 가계신용은 일종의 통화인데, 이것은 인체의 혈액 같은 역할을 한다. 인체의 혈액이 줄어들면 그 활동이 부진해지듯이 가계신용을 억제하면 경제활동이 부진해짐으로써 경기는 하강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도 노무현 정권과 똑같이 가계신용 억제정책을 펼치고 있으니 어찌 국내경기가 살아나겠는가. 가계부채를 줄이고 기업투자를 촉진하려면 국내경기부터 먼저 살려야 할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