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대상)’에서 제외하는 관련 법령 개정에 대한 의견(퍼블릭 코멘트) 접수를 끝낸 가운데 개정안을 심의할 일본 각의가 열릴 시점을 청와대가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일본이 각의에서 개정안을 의결·공포하면 한일 양국 간 무역전쟁은 더욱 첨예한 대치 상황으로 치닫는다. 청와대와 정부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이미 각 기업별로 부품·소재 재고 상황, 설비 신증설 계획, 수입선 다변화 가능성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됐으며 화이트리스트 배제가 공포되면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담화문을 내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5일 일본 언론 등에 따르면 일본 경제산업성이 지난 1일 시작해 전날 자정 마감한 법령 개정 의견 공모에 3만건이 넘는 의견서가 접수됐다. 우리 기업들도 다수의 의견서를 일본 측에 제출했으나 접수된 의견 가운데 90% 이상은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배제에 찬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국내 여론이 일본 정부의 조치를 지지하고 있는 만큼 개정안이 강행될 가능성은 매우 클 것으로 관측된다. 절차상 개정안은 의결·공포 후 21일 후부터 적용된다.
다만 일본 각의가 열릴 시점에는 아직 변수가 많다. 통상 일본의 각의가 화·금요일에 열리는 가운데 가장 빠른 시점인 26일 각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휴가를 떠나며 취소됐다. 이에 따라 이후 개정안을 심의할 각의 일정은 오는 30일, 8월2일, 6일, 9일 정도로 예상된다. 일본 정부가 만약 의견서를 살펴보는 ‘숙려기간’을 취할 경우 각의 날짜는 8월 중순 이후로 미뤄질 수도 있다. 일본 정부의 절차에 따르면 숙려기간은 최대 14일까지 두도록 돼 있으나 연장되는 경우도 많다. 일본의 결정이 지연될 경우 우리 정부로서도 화이트리스트 배제에 따른 파장을 최소화할 시간을 벌 수 있다.
일본이 화이트리스트 제외 결정을 한다고 해도 실제로 얼마만큼 촘촘하게 규제에 나설지는 가늠하기 힘들다. 한국이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되면 첨단소재·전자·통신 등 전략물자를 포함해 군사 전용의 우려가 있는 1,100여개 품목이 개별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는 일본의 수출기업들 입장에서도 큰 부담이어서 일본 정부로서도 전략적 판단이 필요하다. 일본 정부가 국내외 여론을 떠보며 장기간 규제 강도를 조절하면서 우리 정부와 기업을 지속적으로 자극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분석된다.
청와대와 정부는 일본의 개별조치에 따라 유연한 대응전략을 취한다는 방침이다. 변수가 워낙 다양한 만큼 대응책을 한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단기적으로는 부품·소재 수급 활로를 뚫어주면서 중장기적으로 우리 기업들이 일본 기업과의 수직계열화 형태를 벗어나 보다 개방된 글로벌 생태계에 정착하도록 돕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아울러 국제 여론전을 통해 일본을 압박하는 방법도 병행할 것으로 관측된다. 앞서 미국 정보기술(IT) 업계 5개 단체들은 일본의 수출규제와 관련해 한일 양국 정부에 해결방안을 논의해달라는 공동서한을 발송하기도 했다.
정부는 이와 더불어 일본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중대한 정치 일정들이 이어지는 점을 주시하고 있다. 한일관계가 극도로 악화한 가운데 다가오는 ‘8·15 광복절’은 양국 관계의 향방을 가늠할 주요한 고비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문 대통령이 광복절 축사를 통해 일본에 어떤 메시지를 보낼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아울러 9월 초로 예상되는 일본의 개각 및 10월22일로 예정된 일왕 즉위식 일정이 주목된다. 외교가 일각에서는 일본의 가장 중요한 정치 이벤트인 일왕 즉위식에 즈음해 한일 정부가 극적 타협점을 찾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윤홍우기자 seoulbird@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