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 돈이 굴러가야 역사도 굴러간다

■금융의 역사
윌리엄 N. 괴츠만 지음, 지식의날개 펴냄



금융의 사전적 의미는 돈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자금을 원활하게 공급해 경제 활동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게 하는 활동이다. 이처럼 금융은 경제의 실핏줄 역할을 하지만 사람들은 은행, 주식 등만 떠올린다. 특히 전세계를 강타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금융은 탐욕의 상징쯤으로 취급된다.

신간 ‘금융의 역사’는 지난 5,000년 동안의 인류 문명 역사를 금융의 관점에서 풀어낸 책이다. 금융은 인류 최초의 도시가 발전하고 그리스와 로마 제국이 등장하고, 세계를 탐험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게 이 책의 요지다. 금융은 단순히 문명의 조력자인 게 아니라 문명을 낳은 원천이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윌리엄 N. 괴츠만 예일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 겸 국제 금융연구센터장이다. 그는 720쪽이라는 방대한 분량에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의 금융의 역사를 풀어내면서 문명 발달의 공로를 금융에 돌린다. 괴츠만 교수는 예일대에서 미술사학과 고고학을 전공했다. 금융학과 고고학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세계적인 학자로 평가받는다.

대출 기록 위해 발명된 쐐기문자

재산권 보호서 출발한 최초의 법률

경제가치 계량화 위한 수학개발 등


인류의 발전사 금융 관점서 해석


책은 1부에서 고대 서남아시아에서 도시문명과 금융이 동시에 출현했다는데 주목한다. 정치와 사회가 고도로 발전하려면 정교한 경제조직과 기술을 갖춰야 했다는 것이다. 당시 쐐기문자 발명도 대출을 기록하기 위해서였고 수학은 경제적 가치를 계량화하기 위해 출현했다고 주장한다. 최초의 법률 역시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시행됐다는 설명은 상당히 설득력 있다.

고대 아테네가 민주주의로 정치 체제가 전환된 계기도 화폐 도입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돈은 개인이 아테네의 경제적 성공을 공유하는 도구였을 뿐 아니라 국가에 충성하게 만드는 수단으로 작동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책은 금융이 정치·경제·사회 시스템을 고도화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이유를 풍부한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2부 ‘중국이 금융에 남긴 유산’에서는 동서양 금융 발전 과정에서 차이점이 무엇이었는지 중점을 둬 기술했다. 중국에서도 서양과 마찬가지로 경제적 계약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금융기술을 발달시켰다. 특히 송나라는 무려 1,000년전에 지폐 주도의 국가 경제를 발전시켜 금융사에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중국에서 그 이전의 주요 지불수단은 서양의 다른 고대 국가와 마찬가지로 엽전이나 동전이었다. 정부가 각종 이권 사업에 직접 뛰어들면서 금융이 정교한 관료제와 결합한 것도 중국만의 특징이다. 거대한 영토 때문에 지역간 돈을 이동하는 문제가 쉽지 않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관료제를 정교하게 구축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국가가 민간의 경제 활동에 개입했던 과거 유산은 현재의 사회주의 체제가 정착되는데도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3부 ‘유럽이라는 도가니’에서는 유럽에서 금융혁신이 시작된 초기부터 현대적 국제화를 시작한 시기까지를 살폈다. 중국과 달리 유럽 국가들은 대국이 아니었기 때문에 중국과는 다른 금융제도가 출연했다. 소국으로 파편화된 유럽은 창의적이고 독립적인 금융 실험의 전시장이었다. 투자 시장이 발전하고, 주식회사가 발명되고, 비정부 은행제도가 출현했다. 또 복잡한 생명·자산·무역 보험이 등장하며 정교한 금융수학·추론·분석 절차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십자군전쟁 시대에 출현한 성전기사단이 사회봉사기관에서 스스로 금융기관으로 탈바꿈하게 된 역사를 비롯해 실체가 없는 종잇조각을 사고판다는 뜻의 네덜란드어로 ‘바람 장사꾼’이라고 불렸던 300년 전의 증권 중개인 등의 이야기를 실감 나게 그려낸다.

마지막인 4부 ‘국제금융시장 출현’에서는 칼 마르크스, 존 메이너드 케인스 등 자본주의를 비판했던 학자들의 주장과 1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에서 일어난 초인플레이션 등을 통해 현대 자본주의 모습도 전한다. 3만9,000원.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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