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논단] 분노의 정치와 경제

양준모 연세대 교수·경제학
최저임금 인상·일자리 자금 남발
결국 늘어난 것은 단기 일자리뿐
소주성, 기업-근로자 모두 피해
분노 기반 정책은 민생파탄 불러

양준모 교수

나쁜 정치인들은 국민의 분노를 조장하고 권력 투쟁에 이용한다. 유대인들에 대한 반감은 전 유럽에서 팽배했었다. 몇몇 성공한 유대인들의 정경유착과 일부 지식인들의 선동이 반감을 만들어냈다. 사실관계는 중요하지 않았다. 대중의 분노는 프랑스군의 유대인 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와 같은 죄 없는 유대인에게 누명을 씌우고 엉터리 재판이 진행되도록 방조하는 데 일조했다. 유대인들에 대한 분노는 독일 아돌프 히틀러도 이용한다. 민족적 사회주의를 표방한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NAZI)은 유대인 학살이라는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다. 분열과 갈등으로 경제가 파탄이 나도 지지 세력을 확보하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지금도 분노의 정치는 계속되고 있다.

‘왜 분노해야 하는가’라는 책을 쓴 사람은 불평등을 야기한 세력에 분노하고 요구하라고 주장한다. 이해할 수 없는 통계 해석과 궤변으로 국민을 선동하는 사람들이 권력을 잡으면 경제는 파탄이 나기 마련이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은 분노의 정치를 위한 도구였다. 기업소득이 가계소득보다 빠르게 증가한다는 자의적 주장으로 국민을 선동했다.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수십조원의 일자리 자금을 지출했다. 늘어난 일자리는 저소득 일자리고 단기 일자리였다. 고용 사정만 나빠진 것이 아니라 소득분배도 악화됐다. 일부 언론은 소득주도 성장 정책으로 지난 2018년 노동소득분배율이 역대 최대 폭으로 증가했다고 대서특필했다. 노동소득분배율이 증가한 것은 기업소득이 2.0% 줄어서 나타난 현상으로 정책의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 더욱이 2018년 근로자들의 피용자보수 증가율은 박근혜 정부 시절보다 낮은 수치를 보였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은 근로자와 기업이 함께 피해를 보는 정책일 뿐이다. 아직도 소상공인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외치는 것은 과연 무엇 때문인가.


재벌에 대한 대중의 분노는 정치인들의 단골 메뉴다. 대한항공 사태는 정치적으로 경영인들이 희생되는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물컵 사태’는 무혐의 처리됐고 주가는 상승했다. 국민연금이 빚도 못 갚는 경영자보다 경영을 잘하는 경영자의 경영권에 개입했다. 정권이 인권과 재산권보다 지지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큰일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당국의 처리는 이해하기 어렵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회계기준에 따라서 바이오에피스를 자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변경하고 회계 처리를 했다. 이것을 분식회계라고 한다면 원칙주의에 따른 회계 처리 기준은 더 이상 우리나라에서 사용될 수 없게 된다. 사법당국이 가공의 프레임 속에서 기업과 산업의 발전을 농단하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부당하게 통제된 기업은 영업 손실을 내고 국민은 고통받는다. 사법거래 재판정에서 울려 퍼진 “여론의 십자포화 속에서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고 여기까지 왔다”는 판사 출신 피고인의 외침이 재벌 관련 재판정에서도 울리는 듯하다.

반일감정도 분노의 정치에 이용되고 있다. 1965년 6월22일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일기본조약이 조인됐다. 패전국의 식민지로서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일본과의 미래 지향적이고 건설적인 관계를 시작하는 계기가 마련됐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일본과의 통상협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무역 강국으로 성장했다. 존중돼야 할 조약이지만, 한국인들의 감정까지 규율할 수는 없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백색국가 목록에서 제외한다면 우리 산업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는 해결책을 이야기하기 전에 반일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부터 꺼냈다. ‘죽창가’나 ‘12척의 배’는 현시점에서 적절한 단어는 아니다. 언론도 불매운동을 보도하면서 감성적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 ‘총선은 한일전’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국내의 감정적 반일운동이 국제분쟁 해결에 얼마나 도움을 줄지 의문이다. 일본이 팔지 않고 우리나라가 사지 않으면 경제활동은 침체한다.

분노의 정치는 불합리한 정책을 선택하게 하고 문제 해결보다는 갈등을 조장한다. 분노에 기반한 정책은 우리 경제를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고 민생만 파탄 낸다. 정부가 정치적 유혹에서 벗어나 효과적인 정책을 내놓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