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밤, 오랜만에 장문의 편지를 썼더랬다. 어느 틈에 새 아침이 밝아왔다. A4 용지 다섯 장 분량의 편지는 온 새벽을 품어버렸다. 피곤은 느껴지지 않았다. 빠끔 열린 창문 사이로 새벽 공기가 스멀스멀 밀려들었다. 코끝이 상쾌했다. 얼마 만에 육필편지던가. 이 뿌듯함은 뭐람. 그러고 보니 나도 한때는 연서를 제법 썼더랬다. 기억이 가물가물. 아마도 20대였을 것이다. 그때의 감수성이 이 편지에 배었을 리 만무하지만 신협중앙회장으로 쓴 편지는 감회가 남달랐다.
세계신협협의회(WOCCU·워큐) 참석차 미국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 평일이었다. 주말에 임직원에게 편지를 띄웠다면 ‘꼰대’ 소리 좀 들었을 것이다. 아, 오해 마시라. 그 소리를 듣기 싫어서 목요일 밤부터 금요일 새벽까지 단어와 표현과 문장과 씨름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서산대사의 시 한 수를 감상하다가 편지 쓸 마음이 동했다.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하야 불수호란행(不須胡亂行)이라. 금일아행적(今日我行跡)은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이라.”
뜻을 풀면 이렇다. “눈 내린 들판을 걸어갈 제/ 발걸음을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 마라/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이 시는 백범 김구 선생의 좌우명이자 애송시로도 유명한데 신협인뿐 아니라 동시대인이라면 두고두고 새길 만하다 싶다. 자고로 시를 감상할 때는 감상자의 당시 마음 상태가 중요한데 먼 길 앞두고 산적한 과제를 떠올려서인지 한겨울밤에 세차게 내리꽂는 눈발이 연상돼 염천에도 등골이 서늘했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얼마나 섬뜩한 경구인가.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함부로 그것도 ‘어지러이’ 걷지 마라고 경고한다. 이 길은 나와 너와 우리가 함께 밟아 낼 길이다. 신협 임직원들에게 ‘꼭 참 이정표를 세우자’고 말하고 싶었다. 신협은 요즘 ‘핫’하다. ‘고용·산업 위기 지역 경제 살리기 캠페인’은 주요 언론사가 앞다퉈 보도했다. 사회적경제박람회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신협의 사회적가치 실현을 꼭 짚어 치하했다. 신협은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곳, 약한 곳, 아픈 곳을 찾아 보듬고 지원하는 것이 장기다.
우리가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사회적 약자에게는 이정표가 된다. 아직 신협의 공익사업을 잘 몰라 이용을 못하는 사회적 약자도 많다. 신협의 사회적가치와 더불어 구체적인 공익사업을 알리는 일은 우리가 함께해야 한다. 그래서 온 국민에게 뜨거운 박수를 받아야 한다. 신협의 연대와 상생, 그리고 나눔 정신은 능히 그럴 수 있다. ‘우리 오늘도 뒷사람을 배려하며 한 발자국씩 내딛자.’ 나는 이 말을 전하려다 새 아침을 맞았다. 내 정성이 신협의 가족 한 분 한 분께 가닿기를. 육필편지도 능히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