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사법수장을 만나다] 손봉기 대구지방법원장 "수평적 리더십으로 사법신뢰 회복할 것"

구성원 사기·자긍심 고취 노력
사법부 첫 후보 추천제로 임명
상반기 노조 법원장 평가서 3위


“누구나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고 그 호소에 귀를 기울여 공정하게 판단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만 ‘법원다운 법원’이라고 생각합니다. 법원 구성원이 그만큼 국민을 존중·배려하려면 법원장부터 법원 근무자들의 불만을 먼저 들어줘야죠.”

29일 대구 수성구에 위치한 대구법원종합청사. 한눈에도 어느 법원 청사보다 오래된 건물이 마치 대구가 법조 역사를 대표하는 도시임을 웅변하듯 우뚝 서 있었다. 대구지방법원이 포함된 대구법원종합청사는 지난 1973년 건립돼 본원 단위로는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대구는 구한말인 1895년 대구재판소 설치를 시초로 하는 124년 된 법조 도시다. 1987년 부산고등법원이 신설되기 전까지는 경상도 지역 전체 2심을 대구고등법원이 전담하기도 했다.

이날 집무실에서 만난 손봉기(54·사법연수원 22기·사진) 대구지방법원장은 오랜 법조 역사의 도시 한가운데서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앞선 사법개혁을 상징하는 법관으로 통한다. 그는 올 2월 판사들이 직접 참여하는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통해 전국에서 사상 처음으로 법원장 자리에 올랐다. 손 법원장에게 대구는 고향이자 첫 근무지기도 하다. 손 법원장은 “부족하지만 법관으로서 직무 성실성과 품성을 인정받아 추천된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자평했다.

손 법원장은 특히 최근 사법행정 남용 사건 등으로 사법 신뢰가 크게 떨어진 상황을 걱정하며 수차례 ‘법원다움’을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취임 초만 해도 구성원들의 사기와 자긍심이 많이 떨어져 있었던 터라 법원장으로서 취임하고 가장 먼저 힘쓴 것이 이를 회복시키는 것이었다. 게다가 첫 민주적·수평적 절차로 뽑힌 리더인 만큼 사법개혁의 좋은 본보기가 돼야 한다는 간절함이 컸다고 한다.


손 법원장은 “과거에는 인사 작업을 법원장과 수석 부장판사 등 집행부가 하향식으로 진행했지만 올 2월부터는 법관 인사는 법관사무분담위원회에, 일반 직원 인사는 사무국장 등 실무진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대부분 그대로 따랐다”며 “인사를 집단으로 결정하니 비효율적이란 평도 있지만 의사결정 과정이 투명해졌다는 강점도 크다”고 역설했다. 그는 “그럼에도 인사에 대한 불만이 있는 직원들은 암암리에 접촉해 일일이 원칙과 절차를 설명해준다”며 “그것만으로도 상당수가 고마움을 표시하는 등 갈등이 해소됨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손 법원장의 리더십은 ‘포용’에서 나온다. 그는 “외부 사람은 법원에 억울함을 호소하는데 내부 구성원은 사법행정권자에게 불만을 호소하지 못한다는 것은 모순”이라며 “대법원장이 인사권까지 일부 내려놓으면서 임명한 법원장인 만큼 내가 부족한 부분을 법원의 집단지성으로 채우고 내 자신이 이를 포용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 덕분에 손 법원장의 민주적 리더십은 취임 6개월 만에 여러 부분에서 빛을 보고 있다. 미세먼지에 관해 법관들의 문제 제기가 지속되자 모든 판사실에 공기청정기를 비치했는가 하면 법정 내 마이크·음향 시설도 개선 요청을 즉각 수용해 조치했다. 사법행정에 관해 법관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내고 법원장이 이를 열린 마음으로 수용한 결과다. 올 상반기 법원 노조의 전국 법원장 다면 평가에서는 총 91.4점을 획득, 전체 39명의 법원장 중 3등에 오르기도 했다.

사법부 최초로 추천제를 통해 임명된 법원장이었지만 후보를 단수 추천하거나 아예 선거제로 전환하는 방안에 대해선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손 법원장은 “추천제가 인사권자의 권한 자체를 침해하는 수준이 돼서는 안 된다고 본다”며 “선거제의 경우 자칫 인기투표가 되거나 법원이 정치판처럼 변질될 수 있어 반대한다”고 말했다.

법관으로서, 법원장으로서 부임 당시 초심을 늘 생각한다는 손 법원장은 왼손 검지와 약지에 난 상처를 문득 살폈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13~14세 때 2년간 중학교를 가지 못하고 대구의 한 한약방에서 숙식 견습생으로 일하던 시절을 떠올린 것이다. 손 법원장은 “당시 교복 입은 아이들이 너무 부러웠는데 지금도 작두질을 하다 다친 흉터를 보며 늘 초심을 다 잡는다”며 “당시 기억을 거울삼아 법원장으로서 직원들에게 더 베풀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대구=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1965년 부산 △1984년 대구 달성고 졸업 △1988년 고려대 법대 졸업 △1990년 제32회 사법시험 합격 △1993년 제22기 사법연수원 수료 △1996년 대구지법 판사 △2005년 대구고법 판사 △2006년 대법원 재판연구관 △2008년 대구지법 상주지원장 △2010년 사법연수원 교수 △2016년 울산지법 수석부장판사 △2019년 대구지방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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