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남방서치] 자국보호주의에 대처하는 자세

<이순철 부산외국어대교수>
제조업 - 동남아, 전기차 - 인도 중심 新GVC 구축을

삼성SDS와 베트남 정보기술(IT) 서비스 기업인 CMC 관계자들이 지난 26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전략적 투자협약을 체결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번 협약으로 삼성SDS는 500억원을 투자하고 CMC 지분을 25% 이상 인수해 최대 주주가 된다. /연합뉴스

반도체·2차전지 생산기지 베트남

가공식품·화학산업은 인도네시아

유통은 13억명 내수시장 인도 등

지역안배 新GVC 설계로 적극 대응

자금조달·R&D 투자 대폭 확대하고

현지기업 포함 산관학 협력플랫폼 등

건전한 산업생태계 마련 기회 삼아야




최근 대두하고 있는 자국 우선 보호무역주의는 마치 게임의 승자만이 살아남거나 독점적 소재 및 원자재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들이 횡포를 부리는 갬블링(gambling)과 곤봉의 시대로 만들고 있다. 이처럼 세계 무역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 산업이 위험에 노출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를 유례없이 강하게 추진하면서 기존의 세계 무역질서를 뿌리째 뒤흔들고 있다. 더 우려되는 것은 국제 무역을 위협하는 이러한 자국 우선주의 정책이 미국에 한정되지 않고 세계 각국으로 퍼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사회에서 자유무역주의를 강하게 주장하던 일본까지 화이트리스트 제외를 추진하는 등 한국에 대한 수출 제한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가 자국 내의 정치적 문제라고만 가볍게 보기에는 우리 기업이 받는 타격이 너무도 크다.

자국 보호주의 정책의 핵심적 특징은 세계 경제 질서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높은 요소들을 무역제재의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중국 등 무역수지 적자가 심한 국가들에 높은 관세를 부과함과 동시에 국내로의 회귀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일본과 중국은 자국이 가진 기술 우위 또는 첨단소재를 수출규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자국 보호주의는 기존 글로벌밸류체인(GVC)의 파괴를 조장하고 강대국 중심의 새로운 GVC체계로 전환하려는 의도가 크다. 실제로 미국이 중국과 무역전쟁을 하면서 미국 기업들이 본국으로 회귀하고 있거나 중국에서 벗어나 규제가 없는 동남아 국가로 이동하는 등 GVC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신발제조업인 크록스, 맥주 제조기업인 예티, 청소기 제조업체인 아이로봇, 카메라 생산기업인 고프로, 심지어 애플까지 높은 관세부과를 피해 중국에서 말레이시아·인도·베트남·태국 등으로 이전한다는 미국 기업들의 발표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중국의 희토류나 일본의 반도체 소재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대안을 찾는 방안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두 가지를 의미한다. 우선 기존 GVC의 변화이다. 두 번째는 GVC 지도가 기존 중국 중심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다. 그중 동남아와 인도로의 이동이 확연하게 나타나고 있다. 만약에 GVC가 지리적으로 이동하게 된다면 그 지역에서 최소한 20년 정도를 지속하기 때문에 동남아 및 인도가 새로운 GVC의 중요한 국가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우리도 신남방 지역을 중심으로 GVC체계를 구축해야 함을 의미한다. 새로운 생산체계의 구축은 최근 확산하는 자국 보호주의에 대응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새롭게 구축해야 할 GVC는 무역전쟁에서 보호하고 개발해야 할 비교우위산업과 미래산업들이다. 베트남의 경우 우리 기업들이 지난 2000년대 초반에 스마트폰이나 가전 등 완제품의 조립가공 분야를 이전 배치했지만 이제는 반도체·액정표시장치(LCD)·이차전지 등 최첨단기술의 거대장치산업들이 진출하고 있다. 베트남이 우리의 새로운 GVC 거점으로 재편되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베트남은 가공식품, 섬유 및 의류, 전기전자 등의 주력수출산업에서 외국의 부가가치 비중이 절반을 넘거나 70% 이상 기여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가공식품 및 화학이 주력수출산업인데 각각 20%와 40% 수준이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이미 일본이 자동차 등 분야에서 상당한 수준의 GVC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인도에서는 우리 기업들이 자동차와 전자 부문에서 여타 다른 국가에 비해 높은 수익을 낼 정도로 중요한 국가이다. 동남아 지역 및 인도는 제조업 중심의 GVC 체제 구축에 매우 적합하다.

더욱이 인도의 경우는 제조업을 활용한 GVC 구축도 좋지만 지식기반사업을 중심으로 GVC를 구축할 수 있는 여건도 마련돼 있다. 세계 최대의 정보기술(IT)인력과 전문인력을 보유하고 있어 우리 정부가 미래전략산업으로 추진하는 전기차나 수소차, 에너지신산업, 바이오헬스 같은 분야와 소재부품 및 장비, IoT 가전 빅데이터는 인도와의 GVC 협력이 가능하다. 인도는 13억 인구와 급속한 경제성장을 하고 있어 내수시장으로서도 전망이 무궁무진하다는 점에서 유통 등에서도 GVC 구축이 가능하다. 자동차와 조선 등과 같은 장치산업들이 이미 진출해 산업생태계가 구축돼 있는 인도로, 반도체·디스플레이어·이차전지는 베트남, 섬유 및 의류 등은 인도네시아·태국 등과 산업협력도 할 수가 있다.

지역을 적절히 안배한 GVC를 구축해 새롭게 판이 짜이고 있는 GVC에 적극 대응함은 물론 대내외적으로 건전한 산업생태계를 확보하는 것이 주요하다. 물론 이를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새로운 GVC를 재구축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애로 사항이 무수히 많이 나타날 것이다. 이를 신속하게 파악하고 해소해야 한다. 특히 자금조달과 연구개발(R&D) 투자를 대폭 늘려야 한다. 기업들은 제조공정 기술에서 신기술투자를 늘려 제조비용을 축소해야 한다. 산관학도 긴밀하게 협력하고 특히 현지기업들이 한국 기업과의 GVC에 참여할 수 있도록 협력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 신보호무역주의는 장기적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도 주고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이순철 부산외국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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