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슨 '노딜 몰이'…英연합왕국마저 갈라놓나

"브렉시트 합의안 폐기해야"
정부 국경 통제권 강화 등
존슨 강경모드 지속에 반발
스코틀랜드 "위험한 발상"
분리독립 목소리 커질 수도
공포감에 파운드화 가치도 뚝
달러화대비 환율 1.34% 하락

보리스 존슨(왼쪽) 영국 총리가 29일(현지시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를 찾아 니콜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제1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에든버러=AP연합뉴스

보리스 존슨 신임 영국 총리가 기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합의안을 폐기해야 한다고 말하는 등 합의 없는 브렉시트인 ‘노딜’ 입장을 연일 강조하면서 영국이 대혼란에 빠지고 있다. 존슨 총리가 취임 이후 유화 모드로 돌아설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강경한 입장을 이어가자 영국 파운드화 가치는 2년4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며 시장에 공포감을 조성했다. 스코틀랜드·아일랜드 등에서는 독립 목소리가 커지는 등 영국을 구성한 연합왕국(United Kingdom)의 기틀마저 흔들리고 있다.

29일(현지시간) 존슨 총리는 스코틀랜드 파스레인 해군기지를 방문해 “유럽연합(EU) 탈퇴협정을 폐기해야 한다”면서 “그러나 여전히 새로운 합의를 체결할 기회는 있다”고 밝혔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지난해 11월 영국이 EU와 합의한 브렉시트 합의안 대신 새 브렉시트 합의가 필요하며, EU와의 합의가 어려울 경우 노딜 브렉시트도 불사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한층 강경하게 재확인한 것이다.

이에 따라 잉글랜드와 북아일랜드·스코틀랜드·웨일스로 구성된 영국 특유의 구성체인 연합왕국의 존립 기반이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기존 합의안을 버리고 국경통제권과 규제 권한을 회복하려는 영국 정부의 방식에 이들 연합국가가 반기를 들고 분리독립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날 존슨 총리는 영연방 분리독립 움직임을 보이는 스코틀랜드를 찾아 집안 단속에 나섰지만 역효과를 냈다. 그는 스코틀랜드 자치정부에서 검토 중인 제2 분리독립 주민투표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주민투표는 일생에 한 번, 세대에 한 번 하는 것”이라며 “그런 토대에서 투표권을 행사했는데 또 다른 주민투표를 실시해 스코틀랜드나 영국 국민에 대한 약속을 어기는 것은 잘못”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스코틀랜드는 300년 이상 영국의 일원으로 지내오다 2014년 분리독립 주민투표를 실시했지만 독립 반대 55.3%, 찬성 44.7%로 부결됐다.


존슨 총리의 엄포에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인 니콜라 스터전 제1장관은 “존슨 총리가 공개적으로 어떤 말을 하든 실제로는 노딜 브렉시트를 추구하고 있다고 믿게 됐다”며 “브렉시트든 노딜 브렉시트든 모두 반대한다. 그것은 스코틀랜드와 영국 전체에 매우 위험하다”고 밝혔다.

영국 내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데이비드 리딩턴 전 부총리는 최근 BBC 인터뷰에서 “노딜 브렉시트가 실현되면 연합왕국은 더 큰 압박을 받게 될 것”이라며 “이러한 혼란은 스코틀랜드의 민족주의와 아일랜드 통합에 대한 압박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연합왕국에 무관심한 잉글랜드에서 나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든 브라운 전 총리도 최근 런던에서 열린 행사에서 “존슨은 영국의 55대 총리가 아니라 잉글랜드의 초대 총리로 기억될 수 있다”며 존슨 총리의 행보에 우려를 나타냈다.

존슨 총리의 연일 계속되는 강경 모드에 당장 3개월 뒤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파운드화 가치는 급락했다. 이날 파운드·달러 환율은 전날 대비 1.34% 하락한 1.2218달러를 기록했다. 이달 들어서만도 3.4% 하락하는 등 달러화 대비 파운드화 가치는 28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또 존슨 총리의 이날 발언으로 영국과 EU 간 막판합의 가능성이 더욱 희박해졌다는 판단에 파운드화 가치가 추가 하락할 것이라고 시장 전문가들은 전망했다. 노딜 브렉시트에 따른 영향이 아직 외환시장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또 최근 보수당 지지율이 오른 것으로 나타나 존슨 총리가 하원 내 과반 확보를 위해 조기총선을 추진할 수 있다는 관측도 최근 파운드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ING는 “새 정부의 ‘하드 브렉시트’에 대한 단호한 입장이 조기총선 가능성을 확대시키고 이로 인해 파운드화가 압박을 받고 있다”며 “수개월 내 파운드·달러 환율이 1.20달러 밑으로 향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현섭기자 hit812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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