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말많은 ILO협약 비준 끝내 밀어붙이겠다는 건가

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실업자·해고자와 퇴직공무원·교원·소방공무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법 개정에 나선다. 30일 고용부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노동조합법·공무원노조법·교원노조법 등 3개 법률개정안을 마련해 31일부터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가 노사갈등 요인이 큰 노동법 개정을 이처럼 서두르는 것은 유럽연합(EU)의 압력을 의식한 행보로 보인다. 최근 EU는 한·EU 자유무역협정(FTA) 분쟁해결 절차의 마지막 단계인 전문가패널 소집을 요구하며 우리 정부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한국의 ILO 핵심협약 비준 노력이 미흡하다는 EU의 경고 메시지에 정부가 뒤늦게 노동관계법 개정과 협약 비준에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개정안은 실업자·해고자의 노조가입 허용 등 노동계가 요구해온 사항을 대거 수용했다. 더 나아가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규정을 삭제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산업별·지역별 노조 설립과 교섭을 촉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조항까지 넣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노조의 힘은 더 커지고 사측은 노사협의와 경영활동에서 위축될 수밖에 없다.

반면 경영계가 요구하는 사항은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는 정도만 반영됐다. 핵심 요구사항이었던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이나 사용자에게만 책임을 묻는 부당노동행위 폐지는 수용하지 않고 유지하겠다고 하니 가뜩이나 노동계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의 편향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그런데도 이재갑 고용부 장관은 “현장의 우려 등 우리 노사관계의 현실을 고려해 보완입법안을 마련했다”고 하니 어이가 없다.

그렇지 않아도 대내외 악재로 경영환경이 불투명한데 기업들을 궁지로 몰아넣는 불합리한 조항들이 가득한 노동법 개정안에 채찍질을 하니 기업들이 어찌 정부를 믿고 투자와 기술개발에 선뜻 나설 수 있겠는가. 정부는 수정이 필요한 조항에 대해서는 즉각 보완작업에 나서야 한다. 만일 정부가 제 역할을 못한다면 국회가 나서 균형을 잡아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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