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5월 국회의장 퇴임 이후 첫 지면 인터뷰에 나선 정세균 전 의장을 만나러 그의 사무실에 들어선 순간 처음 드는 느낌은 ‘내부가 조금 어둡다’였다. 그렇게 느낀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정 전 의장은 보좌진을 향해 “불을 환하게 좀 켜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취재진에게 “전기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평소에는 필요하지 않다 싶은 등은 꺼두는 편”이라며 “산업부 장관 시절부터 몸에 밴 습관”이라고 설명하면서 환하게 웃었다.
사실 그는 ‘정치통’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국회에서 대표적인 ‘산업통·기업통’이기도 하다. 정 전 의장은 참여정부에서 2006~2007년 산업부 장관을 지냈고 1978년부터 1995년까지 근 20년간 기업체에서 일했다. 자연스럽게 대화의 주제는 현 정부의 경제정책으로 옮아갔다. 먼저 지난해와 올해, 그리고 내년 최저임금 인상 수준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2017년 6,470원이었던 시간당 최저임금은 문재인 정부 들어 2018년 7,530원, 2019년 8,350원으로 가파르게 인상됐다. 2년간 29%가 오른 셈이다. 오는 2020년 최저임금은 올해 대비 2.9% 상승한 8,590원으로 지난달 결정됐다.
“저는 원래 개인적으로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정책 방향이 맞는다고 생각하는 ‘최저임금 인상론자’입니다. 그러나 문 정부 들어와서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 완급 조절에 실패한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정부가 완급 조절에 실패해 경제에 부담을 안긴 점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자영업자 비중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 한국의 상황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자영업자와 소기업은 최저임금 인상이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실패를 보정하기 위해 내년 인상률이 저조한 데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고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최소한의 복지 수준 향상은 병행돼야 할 것입니다.”
그는 소득주도 성장 정책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정 전 의장은 “내가 주장하는 ‘분수경제론’이 있다. 분수경제론의 중요한 한 부분이 바로 소득주도 성장”이라며 소득주도 성장 정책 자체는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다만 문 정부가 간판 경제정책을 잘못 내세웠다고 지적했다. 그는 “저소득층의 소득을 높여 구매력을 확충해주자는 것은 경제원론에 입각해도 맞는 주장”이라며 “그런데 이게 어떻게 정부 경제정책의 간판이 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오히려 혁신성장과 공정경제가 문 정부 경제정책의 간판이 됐어야 했다”며 “정부가 그런 것인지, 언론이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정 전 의장은 얼어붙은 일자리 시장에 온기를 불어넣기 위한 해법도 혁신성장에서 찾았다. “일자리 문제는 우리뿐 아니라 모든 나라가 겪고 있는 진통이자 풀어내야 할 과제입니다. 보호무역주의 심화로 자유무역 질서가 흔들리고 미중 간 패권경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그간 수출주도 성장 전략을 펼쳐온 우리나라는 이런 대외 경제환경의 변화에 취약합니다. 이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과감하고 집중적인 재정투자와 합리적 규제 완화로 혁신성장을 유도해 경제적 ‘파이’를 키워가야 합니다. 다만 단기적으로는 공공 부문을 중심으로 하는 일자리 확충 노력도 필요하다고 합니다.”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우리 경제의 대응 방안을 묻자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잘라버린 알렉산더 대왕의 칼 같은 특단의 해법이 안 보이는 게 고민”이라면서도 “과거에는 경제침체기에 부동산이나 사회간접자본(SOC)을 활용한 경기부양을 추진했지만 지금은 그런 대증요법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모든 산업 분야가 공급과잉 상태이기 때문에 구조적인 변화를 촉발할 수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집중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의 경제적 양극화가 해소되기는커녕 심화하는 데 대한 우려도 표명했다. 그러면서 ‘포용성장’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1차 산업혁명 이후 팽창사회를 구가해온 세계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저성장·저고용 단계로 접어들었고 머지않아 수축사회로 이동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그 과정에서 양극화는 더욱 심해질 수 있습니다. 국가는 민간의 혁신을 유도하는 한편,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통해 양극화를 해소하고 우리나라를 포용사회로 이끌어야 합니다.”
한국이 심각한 저출산 고령화 현상으로 인구재앙을 맞게 될 수 있다는 서슬 퍼런 지적에 대해서는 촘촘한 사회안전망 구축 등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인구절벽 문제를 풀지 못하면 우리나라 경제의 지속가능 발전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저출산의 근저에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깔려 있지요. 청년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채무자로 전락하고, 직장을 구해도 내 집 마련은 요원합니다. 그러다 보니 비혼이 늘고, 결혼을 하더라도 보육과 교육비 부담을 너무 크게 느껴져 자녀를 가질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교육·보육·주거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하고 사회안전망도 더욱 촘촘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임지훈·하정연기자 jhl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