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STORY]정일문 한투 사장 "영업익 목표 1조, 다들 농담 여겨…한투가 첫발 딛겠다"

정일문 한국투자증권 대표이사 사장./오승현기자

전국 어디든 현장 찾는건 기본 중의 기본

지구 75바퀴쯤 돌아…100바퀴 채워야죠

휴가 뒤로 미룬채 해외지점 출장길 올라



정일문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때로는 전쟁통 같은 증권 업계에 발을 들인 것이 정해진 운명이 아니었나 싶다고 회고한다. “광주 충장로에 집이 있었는데 서울로 따지면 명동 상업은행 옆이었다”며 “집 가까이에 증권사도 있었고 부모님이 주식투자도 하셔서 일찍이 광주은행 주주총회에 가서 배당금을 받아오는 심부름도 하며 주식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대학 입학 후 서울로 올라와 막내 이모 집에서 1년 정도 살았는데 당시 이모부는 증권회사에서 투자은행(IB) 업무를 담당했다. “회사에 들어와 영업 다니다가 이모부를 만나기도 해 일부러 피해 다녔다”는 그 이모부는 나중에 중소형 증권사 대표까지 지냈다. 대학 때부터 주식에 관심을 두고 건설주 투자로 재미를 보기도 했다는 그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증권 업계로 발을 들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직장인들에게 7월 말에서 8월 초는 한창 휴가를 떠날 시기다. 남들은 산으로 바다로 잠시 휴식을 떠날 때지만 정 사장은 휴가를 뒤로 미룬 채 해외출장 중이다. 사장 취임 후 아직 한 번도 찾지 않은 해외 영업점을 찾기 위해서다. 출장에 앞서 지난달 29일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한 정 사장은 “런던·뉴욕을 가는데 미팅을 오전8시30분부터 쭉 잡아놓았다”며 출장을 핑계로 가는 휴가가 아님을 명확히 했다. 그는 “하루에 많게는 7개까지 스케줄이 있다”면서도 “진작에 찾았어야 하는데 취임 후 워낙 바빠 엄두를 못 냈더니 현지법인에서 일정을 너무 빡빡하게 잡아놓았다”고 웃었다.

그에게 이런 일은 너무 익숙하다. 현장을 찾는 것을 기본 중에 기본으로 여긴다. 정 사장은 “사장이 된 후로는 사실 영업할 때만큼은 (현장에) 못 가는 것 같다”며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씩 IB·발행어음·프로젝트파이낸싱(PF) 같은 경우 직접 회의를 주재하는데 IB 언저리에 있는 것은 직접 챙긴다”고 말했다.

해외출장에 나서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전에도 전국을 누비며 고객을 만나고 영업점 찾기를 반복했다. 취임 당시 그는 “지금까지 지구 75바퀴(300만㎞)를 돌았는데 앞으로 100만㎞를 더해 지구 100바퀴를 채우겠다”고 공언했다. 임원이 되기 전까지만 100만㎞를 차 4대를 바꿔가며 돌았다. 임원이 되고 나서 사장이 되기 전 부사장 시절까지 총 100만㎞를 달렸고 비행기로 100만마일 정도 되니까 300만㎞를 달린 셈이다.

사장에 오른 뒤에 얼마나 늘었는지 묻자 “사장 취임하고는 별로 안 됐을 것”이라면서도 “그래도 기사분에게 물어보면 임원 중에는 아직도 제가 제일 많이 뛴다고 하더라”고 답했다. 평일에 만나지 못한 고객을 만나느라 그는 주말에도 집에서 쉬어본 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가족은 늘 뒷전이었다. “제가 제일 미안한 부분”이라며 “큰아이와 작은아이 입학식이나 졸업식에 한 번도 못 가다가 약속을 해서 대학 졸업식만 겨우 갔다”고 아쉬워했다. 정 사장은 “입학식과 졸업식이 있는 2~3월이 IB가 가장 바쁜 시기”라며 “감사보고서가 나오면서 앞으로 해야 할 것들에 대한 브리핑도 해야 하고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비용이나 연구개발은 어떻게 하는 게 적절한지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말했다.


27년동안 IPO분야 한우물 판 ‘정통 IB맨’

삼성생명 상장 등 최초·최대 타이틀 싹쓸이

대내외 악재 많지만 한투맨 경쟁력 믿어

잘하는 것에 집중…‘순익 1위’ 꽉 잡을것

정 사장은 증권 업계에 몸담은 1988년 이후 27년간 IB 사업부에서 일하며 한국투자증권에서 IB부문장·IB2본부장·IB본부장 등을 거친 ‘정통 IB맨’이다. 늘 그렇게 바쁘게 보내면서 발군의 실력을 뽐냈다. 특히 IPO 분야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성과를 보이며 ‘업계 최초’ ‘최대’ 타이틀을 달고 다녔다. LG디스플레이(옛 LG필립스LCD)는 2004년 한국과 미국에 동시 상장하며 화제를 모았다. 사상 최대 규모의 IPO로 손꼽히는 2010년 삼성생명 상장도 당시 IB본부장으로 재직하던 그의 손을 거쳤다. 역대 최대 공모 규모(4조8,881억원), 사상 최대 수수료(105억원) 등의 기록을 남긴 삼성생명 IPO 이후 한국투자증권은 IPO 시장의 절대 강자로 우뚝 섰다.

IB맨으로만 머물 줄 알았던 그가 2016년 개인고객그룹장이 됐을 때 시장의 해석은 분분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맡은 일을 수행했다. 정 사장은 “리테일 수장으로 갔을 당시 개인 소액채권을 3조원 정도 팔았는데 제가 나올 때는 10조원을 팔았다”며 “3년 동안 3배가 넘어갔다”고 회고했다.

초대형 IB들의 격전 속에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들이 IB 출신들로 교체되는 시대 흐름이 그를 사장 자리에 올려놓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외변수에 따라 실적이 급변하는 브로커리지(위탁매매)보다는 인수합병(M&A), 기업공개(IPO), 회사채 발행 등 IB 분야가 주요 수입원이 된 결과다. 정 사장이 여기에 딱 맞는 인물이었다.

그는 취임 후 첫 간담회부터 “올해 영업이익 1조원이 목표”라고 말했다. 솔직히 쉽지 않아 보였지만 한국투자증권은 올해 1·4분기 2,746억원의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올렸다. 곧 발표될 2·4분기 실적도 못지않게 좋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 사장은 “구글은 생각할 수 없는 정도의 목표를 준다고 하더라”며 “기존 프레임에서 벗어나게 목표를 세우고 과거와 전혀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1조원라고 했을 때 다들 농담이라고 했다”며 “하지만 언젠가는 대한민국에서 그런 회사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고 아마 나오게 된다면 바로 한국투자증권일 것”이라고 자신했다.

대표이사 취임 후에도 승승장구하는 것만은 아니다. 발행어음의 불법대출 논란,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코오롱티슈진의 상장 업무와 관련해 금융감독원과 검찰 등에서 조사와 수사를 받고 있다. 이럴 때 내부 동요가 없게끔 조직을 이끄는 것도 CEO의 책무다. 정 사장은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순이익 1등이기는 한데 ‘진짜 사회적으로 봤을 때 1등이냐, 만약 1등이라면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 경험해보지 못한 잣대와 기준도 견뎌야 한다’고 말한다”며 “직원들 또한 마음가짐을 재무장해야 할 때 아닌가 싶고, 회사는 1등 회사로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직원들과 더 겸손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내외 악재가 몰아치면서 하반기 증시 상황이 좋지 않지만 그래도 한투맨의 경쟁력을 믿는다는 모습이다. 정 사장은 “항간에 ‘한투만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하는데 사실 저희보다 덩치 큰 회사가 많은데 우리가 돈을 가장 많이 벌었다는 것은 그들이 제공하지 못하는 특별한 서비스, 친절함 등 뭔가가 있으니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며 “한투가 분명히 잘하는 것이 있는 만큼 잘하는 것에 집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으로의 목표를 묻자 “한국투자증권을 대한민국의 노무라 같은 회사,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압도적인 1등, 아시아에서 통할 수 있는 회사로 키워내겠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적으로는 “은퇴하게 되면 벤처기업 무료 컨설팅 같은 것을 해주면서 여기서 배운 기술, 인적 네트워크 등을 사회에 다 돌려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광수·신한나기자 bright@sedaily.com 사진=오승현기자


◇He is… △1964년 광주 △1988년 단국대 경영학과 졸업 및 한국투자증권(옛 동원증권) 입사 △2004년 한국투자증권 ECM부 상무 △2005년 한국투자증권 IB부문장 △2006년 한국투자증권 IB2본부장 △2007년 한국투자증권 IB본부장 △2008년 한국투자증권 기업금융본부장 △2012년 한국중소기업학회 부회장 △2016년 한국투자증권 개인고객그룹장(부사장) △2019년~ 한국투자증권 대표이사(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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