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문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공채로 입사한 회사에서 승승장구하며 최고경영자(CEO) 반열에 오른 것만으로도 증권가에서 화제의 인물로 손꼽힌다. 그는 지난 1988년 한신증권(한투증권을 인수합병한 동원증권의 전신)에 공채로 입사해 올해 1월 31년 만에 사장 자리에 올랐다. 이직이 잦은 증권 업계의 특성상 한 회사에서 30년 넘게 근무하는 것도 쉽지 않거니와 그런 경력을 바탕으로 CEO에 오르려면 실력에 운까지 더해져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게 월급쟁이 신화를 쓴 지 7개월이 지났다. 소회를 묻자 그는 “새삼스레 전임인 (유상호) 부회장이 대단하시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럴 만도 하다. 올해 정 사장에게 대표이사 자리를 물려준 유상호 부회장은 한국투자증권에서만 사장으로 12년을 재직했다. 그런 유 부회장의 뒤를 이어 ‘한투호’를 이끌고 있으니 정 사장이 느끼는 부담감은 적지 않았을 테다. 정 사장은 “저도 임원을 16년째 하고 있으니 나름 경영진이라고 생각했는데 대표이사와 임원의 차이는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자신의 일에 매진하며 묵묵히 자리를 지켜 한국투자증권의 수장에 올랐지만 요즘 말로 ‘꽃길’만 걸어오지는 않았다. 그는 취임 후 첫 간담회에서 “명문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열심히 하면 사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선포했다”고 말했다. 그는 소위 ‘SKY’로 일컫는 대학 출신은 아니다.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만 해도 비인기 부서였던 기업금융(IB)부에 발령받았다. 회사채 발행이나 기업공개(IPO) 등에 관심이 적은 기업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자금조달을 도왔다. 처음에는 그를 외면하던 고객들도 그의 뚝심에 반했고 1990년대 후반 벤처 붐을 타고 벤처기업의 상장이 이어지면서 그의 주가도 급등했다. 2004년 차장에서 부장을 건너뛰며 상무보로 임원 반열에 올라섰다. 이후 2016년 개인고객그룹장으로 옮길 때까지 27년간 IB 전문가로 업계를 주름잡았다.
평사원부터 시작해 사장에까지 오른 성공의 비결을 ‘태도’로 들었다. 정 사장은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애티튜드(태도), 삶과 일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라고 말했다. 그는 “젊은 친구들이 처음 와서 배울 수 있는 게 뭐가 있느냐”며 “돈을 받고 배우는 사람이 갖춰야 할 것은 애티듀드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한국투자증권 입사를 꿈꾸는 취업준비생에게는 ‘도전의식’을 강조했다. 정 사장은 “‘대박을 내려면 유행을 선도하라’는 말이 있다”며 “남들처럼 살려면 유행 따라 살면 된다”고 강조했다. 유행에 뒤처지면 이미 쪽박을 찬 것이고 반대로 대박을 내려면 남이 안 해본 것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 사장은 “이 모든 것이 도전해야만 가능한 것”이라고 재차 도전을 강조했다.
그는 “한투는 그런 기회를 주는 회사고 잘못해도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회사”라며 “한두 사람 나갔다고 흔들리는 것도 없는 문화고 직원들이 일하기 좋은 회사”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선배로서 이런 좋은 회사를 유지, 발전시키는 것이 의무이자 목표다. 정 사장은 “우리 회사를 여전히 잘나가는 회사, 자랑스러운 회사로 만들어놓고 가야 하지 않겠느냐”며 “이것이야말로 제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광수·신한나기자 bright@sedaily.com 사진=오승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