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드 자카리아
도널드 트럼프는 분명 아프가니스탄에서 빠져나올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이번 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끝없는 전쟁을 마무리 짓고 미군을 철수시키며 판을 줄이라”는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직설적으로 전달했다. 확실한 결론을 맺지 못한 채 장기화된 전쟁에 트럼프가 조바심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 18년간 지속된 전쟁을 그대로 이어가면서 새로운 결과를 기대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모든 것은 트럼프가 어떤 마무리 절차를 밟느냐에 달려 있다. 제대로 된 수순이라면 종전 해법의 초점은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사이의 정치적 타결에 맞춰질 것이다. 이 경우 개전 이래 지금까지 미국이 현지에서 거둔 실질적인 성과를 그대로 보전할 수 있게 된다.
반면 마무리 작업이 허술할 경우 미군 철수는 테러리스트 그룹 탈레반을 대담하게 만들어 정부군과의 내전을 재점화시키며 아프간을 또 다른 10년간의 혼란으로 밀어 넣을 것이고 미국은 어떤 방식으로건 아프간에 다시 발을 들여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2011년 미국이 이라크에서 서둘러 발을 뺐을 때도 동일한 상황이 발생했다.
진정한 위험은 미국이 게릴라들과 맞설 때마다 직면했던 딜레마에 다시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헨리 키신저는 1969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되기 전 미국 외교전문 잡지 포린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 기고한 글을 통해 워싱턴이 직면한 딜레마를 알기 쉽게 설명했다. “미국은 긍정적인 목표를 추구한다. 영토를 얻고 효율적인 정부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반면 게릴라 집단은 부정적인 목표를 추구한다. 바로 교란이다. 미국이 군사적 전략을 추진하는 데 비해 게릴라들은 심리적인 전략으로 미국의 의지력을 꺾으려 든다. 미국은 이기지 못하면 지지만 게릴라들은 지지 않으면 이긴다.” 탈레반은 게릴라 작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일부 지역에 아프간 국민정부로부터 독립한 자체적인 정부를 구축했다. 탈레반 자치정부의 핵심전략은 미국이 발을 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여기에 장단을 맞추기라도 하듯 트럼프는 아프간에 더는 미군을 주둔시키고 싶지 않다는 뜻을 종종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카타르 도하에 잘메이 칼릴자드 특사를 파견해 탈레반 측과 일련의 협상을 벌이도록 승인한 트럼프의 처사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도하 협상은 얼마간의 진전을 이뤘다. 다음 수순은 아프간 정부를 참여시켜 대화를 확대하는 것이고 최종 결과는 현재의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을 포함하는 거국중립정부 구성이 돼야 한다. 현실과 지나치게 동떨어진 것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시간을 두고 단계별로 추진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워싱턴의 고민은 탈레반이 휴지 조각처럼 언제든 내팽개칠 수 있는 약속을 되풀이하는 상황에서 미군 철수 같은 불가역적인 양보를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아프간 대사를 지낸 라이언 크로커는 “지금 우리는 베트남전 재방송을 보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당시 미국은 월남에 파병 병력 철수의 대가로 월맹으로 불리던 북베트남으로부터 공세 중단 약속을 받아낸 바 있다. 그러나 일단 미군이 철수하자 월맹은 약속을 뒤집고 월남을 침공했다.
아프간에서 같은 상황이 재연되는 것을 막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정치적 권력 공유와 민족화합 측면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때까지 미군 철수를 연기하는 것이다. 중국·이란 등 이웃국가를 정식으로 협상에 끌어들여 탈레반이 약속을 이행할 수 있도록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워싱턴이 이란과 모든 접촉을 끊은 대가는 아프간의 안정화에 테헤란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2001년 탈레반 붕괴 이후 이란은 아프간의 안정화에 효율적으로 기여했다).
여기에 보태 아프간을 향한 파키스탄의 태도에도 일부 변화가 감지된다. 파키스탄 정부는 미국과 탈레반의 대화를 촉진하는 데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파키스탄 신임 총리인 임란 칸은 아프간을 영구적인 혼란에 묶어두는 방식으로 이 지역에서의 ‘전략적 깊이(strategic depth)’를 유지하려 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만약 칸 총리의 말이 진심이고, 대단히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그가 파키스탄 군부를 통제할 수만 있다면 해당 지역 전체에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믿되 확인하라”는 로널드 레이건의 명언은 이들 협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협상 상대들은 나중에 지켜질 약속에 대한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선이자와 이윤부터 챙기려 들 터이지만 결코 이들에게 놀아나선 안 된다.
미국은 아프간에서 많은 성과를 일궈냈다. 덕분에 40년간의 내전과 탈레반 통치에도 불구하고 아프간은 망가지지 않았다. 예를 들어보자. 탈레반 치하에서 학교에 다니는 아프간 어린이는 약 100만명을 헤아렸다. 오늘날 그 숫자는 900만명으로 늘어났다. 탈레반의 비호를 받던 테러조직인 알카에다의 위세도 현저히 약화했다.
미국이 치르는 비용에 해당하는 아프간 주둔 미군은 1만4,000명으로 이전에 비해 크게 줄었다. 하지만 개선된 현지 상황으로 미국은 추가 철군을 단행하면서도 아프간의 질서유지와 테러와의 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워싱턴은 단지 아프간 전쟁을 끝내는 데 그칠 게 아니라 확실한 평화를 얻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