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론·SK하이닉스(000660)·웨스턴디지털 등 메모리반도체 업체들이 글로벌 수요 감소에 감산을 통한 생산량을 조절하겠다고 밝혔지만 삼성전자(005930)는 “인위적 감산은 없다”고 선언했다. 대신 생산 라인 효율화를 통해 시장 환경 변화에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메모리반도체 1위인 삼성전자가 차별화된 행보를 하는 속내는 무엇일까.
삼성전자가 인위적 감산에 나서지 않는 첫 번째 이유는 담합에 대한 우려다. 마이크론·SK하이닉스 등 삼성전자와 함께 메모리반도체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경쟁사들이 이미 인위적 감산 계획을 밝힌 상태에서 삼성전자마저 동일한 메시지를 전하면 담합으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현재 관련 소송도 진행 중이다. 미국의 로펌 하겐스버먼은 지난해 4월 세계 D램시장에서 95%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 3개 회사가 독과점 지위를 이용해 생산량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가격을 끌어올렸다고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하겐스버먼은 지난 2006년에도 유사한 소송을 제기해 3억달러의 민사 배상금을 받아낸 적이 있다. 당시 하겐스버먼이 근거로 제시한 것도 반도체 회사들이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밝힌 메시지였다.
삼성전자가 자랑하는 초격차 기술력도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다. 미세공정 수준을 높이면 굳이 웨이퍼 투입을 인위적으로 줄이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생산량이 줄어드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미세공정이 수준이 높아질수록 칩 생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공정 난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수율이 떨어져 자연스레 생산량이 줄어든다. 아울러 미세공정 난도를 높이면 같은 웨이퍼를 투입하더라도 보다 많은 칩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원가도 절감할 수 있다. 최근 반도체 가격 하락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미세공정 확대를 통해 원가를 줄일 필요성도 있는 것이다. 이는 압도적인 1위인 삼성전자이기에 가능한 전략이기도 하다. 실제 삼성전자의 원가 경쟁력을 경쟁사를 압도하는 수준이다. 이는 이번 2·4분기 실적 발표에서도 잘 드러났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의 2·4분기 영업이익률은 21.1%로 1년 전(55.1%)에 비해 크게 줄었다. 삼성전자만 놓고 보면 큰 위기라고 볼 수 있지만 경쟁사와 비교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SK하이닉스의 2·4분기 영업이익률은 9.9%에 그쳐 1년 전(53.7%) 비해 더 크게 하락했다. 특히 업황이 좋을 때는 양사의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지만 업황이 둔화되면서 그 차이가 커진 점이 눈길을 끈다. 계속된 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새삼 메모리반도체 업계에서 삼성전자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요즘이다.
/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