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는 내 긍지" 쇳물에 청춘 바친 철강맨

'포항제철 창립멤버' 장경환 전 포스코경영연구소 회장 별세
영일만 제철소서 포스코 기틀 닦고
광양제철소 설립때 日협력 이끌어

장경환 전 포스코경영연구소 회장. /사진제공=포스코

포항종합제철 창립 주역 중 한 명인 장경환 전 포스코경영연구소 회장이 향년 87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지난 1932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나 경북고와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11년간 대한중석에서 근무했다. 1968년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에게 발탁돼 포항제철 창립 당시 입사했다. 포스코 창립 멤버 34명 가운데 한 명이다.

고인은 이후 경북 포항시 영일만 해변 제철소 공사현장 건설사무소(룸멜하우스)에서 숙식하며 포항제철 설립을 주도했다. ‘실패하면 모두 영일만에 빠져 죽는다’는 각오로 포스코의 토대를 닦았던 일화는 유명하다. 장 전 회장은 16년간 포항제철에서 기획실장, 설비기술본부 부본부장, 판매·인사 담당 상무이사 등 중책을 두루 역임했다. 특히 1983년에는 포항제철 도쿄사무소장으로 갔고 광양만에 제2제철소를 건립하기 위해 일본 철강 업계의 협력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당시에는 일본 철강 업계는 ‘부메랑론’을 내세우며 한국을 견제했다. 일본의 기술협력으로 힘을 얻은 한국 철강 업계가 이제 오히려 일본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는 일본 철강 업계의 인식이 강하게 나타나며 지원을 받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고인은 이나야마 요시히로 당시 신일본제철 회장을 설득한 끝에 일본 철강 업계의 협력을 이끌어냈다.


고인은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회장과 박태준 회장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고인의 부친인 장영모 전 의원과 이 회장이 대구에서 양조장 사업을 함께했던 인연 덕분이다. 이 회장은 광양제철소 설립에 일본의 협력을 얻어내는 가교역할도 했다. 고인은 이 회장과의 인연으로 1984년 삼성중공업으로 옮겨 기계·특수 부문 부사장과 사장을 지냈고 1989년에는 삼성그룹 일본 총괄사장을 맡기도 했다. 삼성에 있으면서도 포스코와의 인연은 이어갔다. 삼성중공업은 광양제철소 건설 당시 설비 제작과 설치공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91년 다시 포항제철로 돌아와 회장 특별보좌역으로 근무했다. 1994년에는 고려제강의 고문을 맡았고 1999년 포스코경영연구소 회장으로 취임해 4년간 회장직을 수행했다. 고인은 포스코의 초석이 된 인물들을 다룬 ‘쇳물에 흐르는 푸른 청춘’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포스코는 내 인생의 영원한 자부심이며 긍지”라고 회고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9일 오전9시다. 장지는 충남 천안시 천안공원묘원으로 정해졌다. 유족으로는 부인 윤석희 씨와 아들 장재철 에이엠피컴퍼니 대표, 딸 장현주·은영·혜령씨, 사위 김찬식 벽산 부사장과 박상욱 서울대 자연대 교수 등이 있다.
/박한신기자 hs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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