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자본주의의 번영을 가져온 요인은 크게 세 가지였다. 애덤 스미스가 말한 ‘분업’, 데이비드 리카도가 제시한 ‘교역’, 조지프 슘페터가 강조한 ‘혁신’이 그것들이다. 요즘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교역’이라는 원칙에 대한 부정이다. 리카도는 한 나라가 모든 것을 다 만들 필요가 없다고 봤다. 자국이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재화를 만들어 교역하면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는 비교우위론을 설파했다.
리카도의 시각에서 보면 한국과 일본은 모두 교역을 통해 성공적으로 성장해온 국가들이다. 일본은 기초소재에 경쟁력이 있었고 한국은 이를 수입해서 만드는 중간재에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최근 일본의 행위는 반칙이다. 적대적 반칙은 응전을 부른다. 우리 입장에서는 소재의 국산화를 추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소재의 국산화에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어느 재벌 총수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모두가 경제 자립도를 높이는 세상이 한국에 좋은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한국은 비교우위의 원칙이 관철됐던 글로벌라이제이션 시대의 최대 수혜 국가였기 때문이다.
비교우위에 근간한 교역이 당사자 모두에게 이득을 준다고 보면 최근 일본의 행태는 스스로에게도 상처를 주는 자해 행위다. 일본 경제의 상황이 그리 좋은 것도 아니다. 지난 2012년 2차 아베 신조 정권 출범 이후 진행되고 있는 아베 노믹스도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많은 국가의 중앙은행들이 적극적 통화정책을 통해 경기를 부양했지만 일본은 정도가 너무 심하다. 일본 은행의 총자산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102%에 달한다. 유럽중앙은행(ECB)의 GDP 대비 자산 규모는 40%이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17%에 불과하다. 일본 은행은 국채뿐만 아니라 주식까지 사고 있을 정도로 오지랖이 넓다. 이런 노골적 관치경제는 지속되기 어렵다.
일본도 상황이 녹록지 않은데 왜 자해적 행위를 했을까. 아베 신조라는 인물은 일본인들이 경험한 집단적 좌절의 산물이라고 본다. 일본은 1980년대 후반부터 소위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했다. 2009년 일본인들은 자민당 50년 장기 집권을 무너뜨리고 민주당으로 정권을 넘겨줬다. 나름 변화의 몸부림이었던 셈이지만 결과적으로 민주당의 무능함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 또한 2011년 후쿠시마 원전 폭발은 ‘안전사회 일본’ 신화를 깨뜨렸다. 뭘 해도 안되는 상황에서 아베가 정권을 잡은 것이다. 내부의 문제가 해결이 안될 때는 외부의 적을 만들어야 체제가 유지될 수 있다.
걱정스러운 점은 상당수 국가의 정치적 레짐이 일본과 비슷하다는 점이다. 주요 국가들에서 소위 스트롱맨들이 득세하고 있다. 자국 이기주의를 노골화하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노딜 브렉시트를 주장하는 영국의 보리스 존슨, 집단지도 체제를 사실상 폐기하고 중화주의를 강조하고 있는 중국의 시진핑, 슬라브 민족의 영광을 재연하겠다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등이 그들이다. 한결같이 배타적인 자국 이기주의와 민족주의의 코드가 흐르고 있다.
이런 반동이 왜 나타날까. 많은 국가가 풀리지 않는 내부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크게 보면 양극화의 문제다. 계층별 양극화는 매우 심각하고 실물경제와 자산시장의 괴리도 심각하다. 주요 선진국들의 경우 산업생산은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을 겨우 회복하고 있는데 주택과 주식시장은 뜀박질을 해왔다. 지속되기 힘든 부조응이지만 해결 방법은 마땅치 않다. 모두가 외부의 적을 원하는 형국이고 이는 좌우를 가리지 않고 배타적 민족주의로 표출되고 있다. 분업과 교역·혁신이라는 자본주의의 교범은 절대적 파이를 늘리는 데는 기여했지만 불평등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이에 대한 반동적 대응이 배타적인 민족주의라는 외피를 쓰고 나타나고 있고 이런 점이 세계화 시대의 모범국이었던 한국 경제가 직면한 본질적 리스크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