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항공모함 USS울버린./위키피디아
1942년 8월12일 미국 뉴욕주 버팔로 조선소. 미 해군이 항공모함 ‘울버린호(USS Wolverine)’를 진수시켰다. 미시간주의 상징물인 족제비(울버린)를 함명으로 삼은 이 배는 길이 170m의 비행갑판을 갖춘 중대형 항공모함으로 보였으나 특이한 구조를 갖고 있었다. 외형상 특징은 증기 외륜. 석탄을 연료로 양 현에 붙은 외륜을 돌렸다. 무장과 복잡한 통신장비는 아예 달지 않았다. 비행갑판의 효율적 운용에 필수적인 함재기용 승강기도 없었다. 무엇보다 특이한 점은 운용 장소. 바다가 아니라 미시간 호수에 띄웠다.
‘호수의 항모’가 의아하지만 저비용에 상대적으로 안전한 이·착함 훈련 장소로 오대호 만한 곳도 없었다. 미 해군의 교육시설이 밀집된 미시간호는 면적이 58만㎢로 남한 크기의 절반 이상. 큰 파도가 없고 민물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바다와 환경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대호를 각종 전투함의 교육장소로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는 진작부터 나왔으나 보류해온 사안. 함정과 함재기의 소음과 검은 연기를 싫어하는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전쟁 발발 후 반대론이 쏙 들어갔다.
미 해군은 전쟁을 치를수록 인력 부족에 시달렸다. 산업구조를 전시생산체제로 돌리며 각종 무기를 대량 생산했지만 사람은 속성 양성이 어려웠다. 특히 새로운 전력인 항모 인력은 절대적으로 모자랐다. 미 해군이 2차 대전시 생산한 항모는 약 150여척. 3만톤급 이상 정규 항모 40여척에 1만톤급 보조항모 110여척을 건조했다. 여기에 상선을 개조한 호위항모까지 합치면 약 200여척으로 늘어난다. 울버린도 증기외륜여객선 시앤비(Seeandbee)호를 75만6,500달러에 사들여 3개월 동안 개조한 함정이다.
미 해군은 호수용 내륙 항모를 한 척 더 사들였다. 증기외륜여객선 ‘그레이트 버팔로호’를 350만달러를 투입해 세이블(Sable)이라는 함명을 지닌 항모로 개조해 울버린호처럼 써먹었다. 미시간 호수에 뜬 두 척의 내륙 항모는 기대 이상의 실적을 거뒀다. 두 항모는 11만6,000회 이·착함 훈련을 통해 조종사 1만7,820명과 관제 및 갑판 요원 4만여명을 쏟아냈다. 미 해군은 최소한 일주일 내내 울버린에서 신참 조종사를 교육했다. 맞바람이 부족하면 지상 활주로에서라도 떴다. 미국을 몰래 찌르며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궁지에 몰리자 소년병을 두 시간 교육시켜 자살특공대로 내몰았다. 어떤 싸움이든 승패를 결정하는 것은 돈과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다.
/권홍우 선임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