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言)에는 잠재된 의식이 숨어 있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의 과거 발언을 통해 그의 기업관을 들여다봤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여전히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 ‘동생’에게는 법 적용이 엄격한 데 반해 특혜를 받아 성공한 ‘맏아들(재벌을 지칭)’에게는 사회적·도덕적 책임은커녕 법적 책임조차 제대로 묻지 않는다면 ‘동생’들의 실망은 매우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업 지배구조 전문가인 조 후보자의 대기업관(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경제 검찰로 불리는 공정위 수장의 생각에 따라 기업집단 정책이 바뀌고 이는 경제 활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그는 공정경제연합회가 발간하는 ‘경쟁 저널’에 지난 2012년 기고한 ‘대규모 기업집단 정책의 새로운 모색’ 글에서 “1997년 위기 이후 재벌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가 커지고 이 둘 간의 ‘탈동조화(Decoupling)’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면서 “위기 이후 재벌의 성장이 더 이상 중소기업 부문의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고 두 부문 간의 관계가 약해지고 있다”고 썼다. 대기업 낙수효과가 사라졌다는 현 여권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조 후보자는 “정부는 경제성장뿐 아니라 재벌과 중소기업의 탈동조화 또는 양극화를 완화시키면서 균형성장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정책 제언을 했다. 특히 “국내 경제와 연관성이 낮아진 수출 대기업보다 국내 경제에 전후방 연관 효과를 창출하는 기업에 대한 정책적 관심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폈다.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관행에 대해서도 비판적 시각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조 후보자는 “기업집단 소속 계열회사들이 마치 거대기업의 한 부서와 같이 행동해 상품·용역거래를 통해 계열사를 지원하는 행위가 종종 보고된다”고 적었다. 이어 “그 결과 재벌 계열사들이 안정적으로 성장해가고 있는 반면 재벌과 관계를 맺지 못한 중소기업은 내수시장 부진과 재벌들의 가격 인하 압력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 후보자가 재벌을 바라보는 시각은 이들을 ‘특혜를 받아 성공한 맏아들’이라고 표현하는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유진수 숙명여대 교수의 저서 제목 ‘가난한 집 맏아들’을 인용한 것인데 재벌들이 경제 개발시대에 특혜를 받아 지금의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한 만큼 균형발전 측면에서 재벌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조 후보자는 대표적 주주환원 정책인 자사주 매입에 대해서는 대주주의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서의 역할에 주목했다. 그는 2016년 한국재무학회 춘계 심포지엄에서 ‘주주 환원정책을 통한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은 가능한가’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는데 “한국 기업의 자사주 매입은 경영권 방어와 관련된 경우가 많다”며 “소각이 아닌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당시 경영권 방어 사례로 엔씨소프트와 넥슨·삼성물산과 엘리엇 간 경영권 분쟁을 들기도 했다.
한편 조 후보자는 과거 ㈜한화의 사외이사를 맡을 때 이사회 출석률이 75%를 겨우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조 후보자는 2010년 3월 임기 3년의 한화 사외이사로 선임됐고 2013년 4월 증권선물위원회 비상임위원이 되면서 이사직을 사임했다. 이날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조 후보자는 임기 중 한화에서 열린 8차례의 이사회(이하 의결안건이 있는 회의) 중 6차례 참석하고 2차례는 불참했다./세종=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