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일본회의

일본은 1990년대 제국주의 침략 역사를 반성하는 ‘고노담화’와 ‘무라야마담화’를 거치면서 역사 인식에 중요한 변화를 보였다. 이는 동시에 메이지유신 이후 근대적 통일국가를 만드는 과정에서 형성된 일본인의 정체성이 흔들렸다는 뜻도 된다. 이 틈을 비집고 세를 키워간 극우단체가 ‘일본회의’다. 1997년 발족한 일본회의는 거품 경제가 꺼지면서 일본 국민들이 정체성 혼란을 겪는 틈을 타 조직을 확대해 나갔다. 회원 수는 3만8,000명 정도로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다. 하지만 일본 국회의원의 80%, 아베 신조 총리 내각의 80% 이상이 이 단체 소속 회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일본이라는 나라의 중요한 의사 결정은 이곳에서 이뤄진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극우 발언을 자주 하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과 아소 다로 재무상도 회원이며 아베 총리도 회원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회의는 황실 중심, 헌법 개정, 국방 강화, 애국 교육 등을 주장한다. 특히 평화헌법 9조 1항 전쟁 시 무력행사 포기, 2조 전력 보유 교전권 불인정 등을 개정해 메이지 헌법으로 회귀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다. 메이지 헌법은 천황을 중심으로 한 신의 국가, 천황이 주권이고 군주인 체제를 지향한다. 한마디로 패전을 인정하지 않고 그 이전의 제국주의 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이렇게 보면 일본회의의 뿌리는 한반도를 정벌해 일본의 국력을 키우자는 메이지시대 정한론까지 올라간다. 아베 총리는 2009년 요시다 쇼인의 묘소를 참배했다.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당시 “요시다 쇼인이 정한론의 원조”라며 “아베의 요시다 묘소 참배는 자신이 옛 제국의 영광을 되찾는 역할을 해내겠다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결국 정한론의 사상적 토대가 이어져 일본회의가 탄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베 총리가 한국을 상대로 느닷없는 경제전쟁을 일으킨 이후 그의 도발 배경이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이 커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구심점으로 일본회의를 지적한다. ‘일본회의의 정체’의 저자 아오키 오사무씨는 “일본회의가 전후 일본의 민주주의체제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악성바이러스”라고 주장한다. 백신도 없이 바이러스에 노출돼 있는 일본의 폭주가 걱정된다. /한기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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