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밤(현지시간) 홍콩국제공항에서 송환법 반대시위대에 붙잡힌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 소속 기자가 손이 묶여 억류된 채 여권을 들어 보이고 있다. /홍콩=로이터연합뉴스
중국 인민해방군이 홍콩과 인접한 선전에 집결해 무력투입을 경고하고 나섰다. 홍콩에 대한 무력개입 가능성을 내비쳐온 중국이 13일 홍콩국제공항을 점거한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 반대시위대가 중국 매체인 환구시보 기자를 구금·폭행한 것을 명분으로 홍콩에 군대를 투입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계엄령 선포 또는 강경진압을 감행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14일(현지시간) 베이징청년보 산하 위챗 계정인 정즈젠에 따르면 중국 동부 전구 육군은 자체 위챗 계정인 ‘인민전선’을 통해 “선전에서 홍콩까지 10분이면 도달할 수 있다”며 유사시 홍콩 사태에 개입할 수 있음을 강하게 시사했다. 동부 전구 육군은 선전만 부근 춘젠 체육관에서 군용 도색을 한 차량이 대거 대기하고 있는 사진을 공개하며 이곳이 홍콩 공항에서 56㎞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고 위협했다. 또 홍콩 특구에 통제할 수 없는 ‘동란’이 일어날 경우 중국 중앙정부가 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중국 본토 무장경찰이 아닌 중국군이 직접 무력개입을 경고하고 나선 것은 홍콩에 대한 계엄령 선포나 강경진압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선전만에서 다리를 건너면 홍콩 북쪽 신계 지역으로 바로 연결된다”며 “중국 동부 전구 육군이 언제라도 홍콩 사태에 투입될 준비가 돼 있음을 경고하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경고 수위가 높아진 것은 전날 홍콩공항 점거시위 당시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 기자가 홍콩 시위대에 집단폭행을 당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환구시보는 이날 “홍콩 시위대가 공항에서 열린 불법집회 도중 관광객 한 명과 기자 한 명을 폭행했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이후 중앙인민정부 홍콩 주재 연락사무소(중련판)는 성명에서 “테러리스트들의 폭력행위와 다를 것이 없다”며 이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홍콩에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도는데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여전히 관망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 비판을 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기자들과 만나 “홍콩 문제는 매우 힘든 상황”이라면서도 “잘될 것으로 확신한다. 중국을 포함해 모두가 잘되기를 바란다”는 원론적 입장만 내놓았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중국 정부가 홍콩과의 접경지역으로 병력을 이동시키고 있다고 우리 정보기관이 알려왔다”며 중국의 군대 파견 사실을 알렸지만, 중국의 무력개입에 강력히 경고하지 않았다는 데 대해 미 정치권과 전문가들은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미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의 외교정책 전문가인 토머스 라이트는 트위터에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영토개입의 청신호를 줬다”며 사실상 홍콩 시위에 대한 중국의 개입을 승인한 게 아니냐고 비판했다.
다만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전날 뉴욕에서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 담당 정치국원과 만나 홍콩 시위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했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미 국무부는 두 사람 간 대화의 세부 사항을 밝히지 않았으나 중국의 홍콩 무력진압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홍콩 사태 대응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AFP통신에 따르면 미 해군 태평양함대는 미 상륙수송함 ‘그린베이’와 미사일순양함 ‘레이크이리’가 각각 오는 17일과 9월 홍콩 입항을 요청했으나 중국 정부가 거부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그동안 중국이 홍콩 시위에 미국 등 서방국가가 개입됐다고 비난해온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당국의 무력개입 가능성을 언급하며 두 국가 간 갈등이 증폭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희윤기자 heeyou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