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의 ‘신묘년풍악도첩’ 중 ‘단발령망금강도’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이걸 어찌 말로 다 표현할까. 이 모습을 어찌 다 그리겠는가. 36세에 처음 금강산을 찾아간 겸재 정선(1676~1759)의 시각적 충격은 엄청났다. 구불거리고 가파른 산길을 따라 단발령에 오른 순간, 펼쳐진 풍광에 말문이 막혔다. 빽빽하게 들어선 산봉우리들이 서릿발처럼 날카로워 눈이 부셨다. 겸재는 자신이 본 장면을 그대로 담기보다는 그 순간의 감동을 화폭에 얹었다. 과감하게 화면을 사선구도로 갈라서, 일행이 밟고 선 단발령 쪽 토산(土山)의 텁텁함과 건너편 일만이천봉 암산(巖山)의 반짝임을 대조적으로 그렸다. 약간의 과장도 더하고, 운무 드리운 생략으로 강렬한 첫 느낌을 부각했다. 보물 제1875호로 지정된 ‘단발령망금강산도’는 그렇게 탄생했다. 화가가 제목에 적은 망(望)자는 바라본다는 뜻도 있지만 기대와 희망의 뜻도 품고 있다. 그저 본 것만을 그린 게 아니라 기대하고 바라던 마음까지 함께 담았음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특별전 ‘우리 강산을 그리다: 화가의 시선, 조선시대 실경산수화’는 이 작품으로 문을 연다. 정선과 김홍도 등 조선 대표화가의 360여 작품을 국내외 소장처에서 모아, 총망라 한 전시다.
실경(實景)이란 말 그대로 ‘실재하는 산수’다. 가 본 적 없는 중국 명산을 그림을 보고 따라 그리는 ‘관념산수’가 아니라 실재하는 주변의 산천을 그렸다 하여 ‘실경산수’라 부른다. 장면의 관찰보다 순간의 감동을 강조해 풍경을 재해석 한 ‘18세기 조선식 인상파’ 정선의 ‘진경(眞景)산수’도 실경산수의 일파라 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화가의 시선과 창작과정에 방점을 찍어, 그릴 수밖에 없게 한 자연의 오묘한 힘을 함께 보여준다.
현존하는 관동도 가운데 가장 오래된 ‘총석정도’.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달 이를 기증받아 유람 시기로 그림에 적힌 정사년이 1557년임을 최근 확인했다.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공개된 16세기 ‘경포대도’ ‘총석정도’는 조선 실경산수의 근원을 되짚으며 일찍이 중국과 별개로 우리 선조들이 가진 주체적 시각과 표현법을 입증한다. 총석정의 솟은 돌기둥을 표현하고 싶어 발을 동동 구르던 옛 화가는 가는 붓으로 짧은 선을 일일이 그어 돌기둥의 질감을 묘사했다. 이수미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은 “16세기 화풍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현장의 특징에 맞게 화면 구성과 묘사법을 창의적으로 변화시켰다”면서 “관동지역의 명승도가 그려졌다는 기록은 고려 때도 등장하지만 전해지는 게 없는 상황에서 이 작품은 현존하는 관동도 중 가장 오래된 그림”이라고 설명했다. 박물관 측은 지난달 이 그림들을 기증받았고, 연구 결과 1557년 정사년에 여행을 다녀온 후 그린 작품임을 확인했다. 문화재위원장을 지낸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16세기의 대표적인 실경산수화로, 이러한 작품은 한번 보는 인연도 맺기 힘든 그림”이라 극찬했다. 시대적 충격이었던 ‘총석정’은 이후 정선, 김홍도 등에게로 이어지며 개성있게 표현됐다.
김홍도의 ‘해동명산도첩’ 중 ‘만물초’.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관람객들이 김홍도의 화첩과 정수영의 두루마리 그림을 감상하고 있다. /조상인기자
전시 2부에서는 현장 스케치 격인 산수화 초본이 공개됐다. 단원 김홍도(1745~1806 이후)가 정조의 어명으로 1788년 9월을 전후해 50일간 다녀온 관동지역과 금강산 ‘출장’의 기록은 폭 16m의 ‘해동명산도첩’으로 남았다. 마지막 피금정(披襟亭) 장면에 60면이라고 적혀 원래는 60폭짜리로 추정되지만 박물관 소장품으로 전하는 것은 총 32면이다. 펼쳐진 그림을 따라 걸으면 김홍도와 동행하는 기분이다. 본 것에 대한 감흥을 주워담느라 분주했을 화가의 바쁜 손길이 느껴진다. 윤곽선 위주로 간략하게 그렸지만 특징 묘사는 정확하다. 파도를 일일이 그릴 수 없어 용수철 모양으로 간단히 그리거나, ‘짙은 푸른색(深靑)’이라고 적어 나중에 채색할 것을 준비했다. 수종(樹種)을 구분해 그릴 시간이 부족했던지 나무의 대략적 형태만 그린 다음 가지 한두 개만 구분해 그린 것도 흥미롭다.
마주해 전시된 문인화가 정수영(1743~1831)의 여행길은 한결 여유롭다. 어명에 출장 나온 화원과 달리 ‘한임강유람도권’의 그는 뱃길을 따라 한양부터 원주까지 경기 부근을 그렸다. 지나다 눈에 띄는 풍광은 확대하듯 한번 더 그리기도 했다. 배웅나온 지인의 손을 잡아끌고, 피리 부는 늙은 어부에게 술을 따라주며 배에 태운 모습이 글과 그림으로 남아 운치를 더한다.
여행의 멋과 맛은 김윤겸(1711~1775)도 탁월하다. 내금강 명승을 그린 ‘봉래도권’과 영남지역 명승을 돌아다니며 그린 ‘영남기행화첩’은 생략과 추상이 가미됐음에도 생기와 청량감을 고스란히 전한다. 전시를 기획한 오다연 학예연구사는 “간략한 필치의 김윤겸 작품은 웹툰같은 현대적 미감까지 느껴진다”했고 “정수영은 금강산을 다녀온 화가들은 어떻게든 뾰족한 산봉우리를 그려넣으려 애쓰지만, 날씨 탓에 안보인 봉우리를 구름으로 덮어 생략하는 과감함이 돋보인다”고 설명했다.
김윤겸의 ‘영남기행화첩’ 중 ‘극락암’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반면 김홍도와 금강산 50일 출장에 동행했던 김응환(1742~1789)은 금강산과 관동팔경 등 영동지역 명소를 4책 총 113면의 ‘해악전도첩’으로 꼼꼼하게 남겼다. 개성있고 거침없는 화법을 펼치되 화원의 소임에 투철했던 그는 금강산행 이듬해에 그림을 완성하고 요절했다. 오 학예사는 “김응환이 정선의 금강전도를 방작(따라 그림)한 것과 실경산수로 그린 금강산 그림을 비교해 보면 금강산을 독창적으로 표현한 기량은 동시대 어느 화가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고 말했다.
전시 후반부의 화가들은 실경을 뛰어넘어 더욱 과감해지고, 붓 대신 손가락이나 손톱을 이용해 그리기도 한다. 작품의 여운도 진하지만, 정선과 김홍도 외에도 뛰어난 화가들이 많았으며 이들이 서양의 인상주의 화가들 못지않은 감각파였다는 사실이 뿌듯함을 안겨주는 전시다. 9월 22일까지.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