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가운데)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모나카의 셸 석유화학단지에서 근로자들의 환호에 화답하고 있다. /모나카=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일부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를 오는 12월로 늦춘 것을 두고 “크리스마스 쇼핑시즌과 관련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단지 많은 사람을 돕기 위한 일이다. 관세가 미국 소비자들에게 영향을 미칠 경우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덧붙였다.
미국에서 크리스마스 전후는 소비시장의 최대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대로 미국이 다음달 1일부터 휴대폰과 노트북·장난감 같은 중국산 소비재 3,000억달러어치에 10%의 관세를 물릴 경우 미국민들은 그만큼 비싸게 쇼핑을 해야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단순히 크리스마스 쇼핑만 염두에 두고 이번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보다 트럼프 대통령을 움직인 것은 뉴욕증시의 주가 하락이었다는 게 중론이다. 헤이먼캐피털매니지먼트 창업자인 카일 배스는 “증시가 몇백포인트 하락할 때마다 대통령은 뒤로 물러난다”고 설명했다. 실제 뉴욕증시의 다우존스지수는 이날 무역갈등 완화 기대로 1.4%가량 올랐지만, 지난달 별 소득 없이 끝난 상하이 무역회담 이후 1,000포인트 이상 떨어진 상태다.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경제성과를 최대 최적으로 삼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주가 하락은 치명타다.
경기침체 우려가 빠르게 확산되는 것도 부담이다. 이날 1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은 연 1.678%에 그쳐 단기국채인 2년물(1.667%)과의 차이가 0.01%포인트까지 좁혀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지난 2007년 이후 장단기 수익률 차가 가장 근접하면서 역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장단기국채를 대표하는 10년물과 2년물의 역전은 강력한 경기침체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도 경기침체 우려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 현상을 지목해 “미 국채가 마이너스 금리로 가는 것을 막을 장벽이 없다”고 했다.
관세 부과 연기 규모가 크다는 점도 이런 해석을 뒷받침한다. 외신 분석에 따르면 애플 에어팟과 애플와치 등은 이번 관세 부과 연기 대상에서 빠졌지만 전자제품과 스포츠용품·비디오게임기·신발 등 12월까지 10%의 관세 부과가 미뤄지는 품목은 약 1,560억달러어치에 달한다. 당초 관세 부과를 계획했던 3,000억달러의 절반을 넘는 규모다. USTR은 또 건강과 안전에 관련된 품목은 아예 관세 부과 대상에서 빼기로 했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후퇴하자 시장에서는 이번 조치로 미국이 중국에 무역협상의 주도권을 빼앗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미 경제방송 CNBC는 “미국이 어느 정도의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면서 이는 중국이 미국에 충분한 압박을 가하면 미국의 굴복을 얻어낼 수 있다는 신호를 준 것이라고 해석했다.
물론 중국 측의 고통도 만만치 않다. 14일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7월 중국 산업생산은 전년동월 비 4.8% 증가에 그쳐 전달의 6.3%를 크게 밑돌며 2002년 이후 17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중국 내수시장의 활력도를 보여주는 소매판매액도 이 기간 전년동월 대비 7.6% 증가해 전월(9.8%)과 시장 예상치(8.6%)를 모두 밑돌았다.
다만 이 같은 경제충격에도 양국이 협상에서 쉽사리 타협점을 찾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관세 부과 연기에 화답하듯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절상하면서 협상에 숨통이 트였다는 해석이 나오지만, 최종 합의에 도달하기에는 양국의 간극이 너무 크다는 얘기다. 이날도 미 상무부는 “중국이 미국의 원자력 기술을 군사용으로 전용하고 있다”며 중국 광허그룹을 포함한 4곳에 원전 기술과 부품수출을 사실상 전면 금지했다. 미 정부 고위당국자는 WSJ에 “관세 연기가 베이징에 대한 화해로 보여서는 안 된다”며 “다음달 워싱턴에서 중국과 협상하겠지만 중국이 공정경쟁을 위한 구조적인 변화에 계속 저항한다면 진전이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