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유적지 입구 앞에 골목.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오후 중국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유적지. 매년 치솟는 상해의 부동산 가격 탓에 여느 도심 속 유적지처럼 주차장이 없다. 임시정부에 들어가려면, 차 한 대도 지나가지 못하는 좁은 골목을 걸어야 한다. 도착한 입구는 대문을 열고 더위를 식히는 낡은 주택들과 마주해 있다. 임시정부 측면 옆으로 위치한 주택가에도 빨랫줄이 길게 이어졌고 이 줄에는 옷들이 걸려있었다. 3층까지 둘러보고 나오는데 20분도 걸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공간. 하지만 이 곳에는 가구부터 태극기까지 당시의 생생한 기록이 남아있다.
우리나라 역사의 ‘아픔’은 이처럼 중국에서 가장 화려한 도시 상해에서 초라한 외관으로 있었다. 임시정부가 이 곳에 자리잡기까지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13년간 프랑스 조계지에 청사를 뒀다가 일제의 감시와 재정 부족으로 장소를 이리저리 옮겼다. 1993년 원형이 복원됐고 2001년이 돼서야 이 곳에 정착할 수 있었다.
이날 100주년을 맞은 임시정부는 한국인들로 더 북적였다. 매표소 앞 인도에는 30여명의 한국인 관광객이 단체 사진을 찍기 위해 대열을 만들고 있었다. 휴대폰 화면에 태극기를 띄우고 임시정부가 한글 간판 앞에서 사진을 찍는 20대 여성들도 있다.
임시정부의 정신은 현재도 한국인의 가슴을 울린다. 지난 11일 중국으로 여자친구와 휴가를 와 임시정부를 둘러본 김영호(가명·31)씨는 “가벼운 마음으로 왔는데 경건함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간호사인 손미호(가명·26)씨는 “3~4번 왔는데 올 때마다 가슴 속이 따뜻해지는 것 같다”고 전했다. 3년간 임시정부 관리직원으로 일해온 30대 초반 중국인 장산(가명)씨는 “한 번은 노인이 와서 무릎을 꿇었다”며 “(임시정부 내) 김구 동상 앞에 앉아서 흐느껴 우는 노인도 있었다”고 말했다. 장씨는 동료 직원과 입장객 표를 받느라 바쁘다.
“올해 임시정부 100주년이어서 다양한 행사가 치러졌어요. 한국인 방문객이 늘어 하루 500명 정도 오는 것 같습니다. 근무하는 3년 동안 일본인이 온 경우는 없었어요. 입구 앞을 지나치는 정도죠.”
장씨의 말처럼 임시정부는 정작 이 곳을 만들게 한 일본인에게는 외면받고 있었다. 하루에 한국인 수백명이 왜 다녀가는지, 한국이 왜 지금 분노하고 있는지 일본인에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본의 역사인식에 갇힌 임시정부는 빠르게 변하는 상해에서도 물리적으로 한 켠씩 밀려나고 있다. 임시정부로 들어가는 골목 옆에는 새로운 상점이 들어서기 위해 공사가 한창이다. 매표소 앞을 외국인들은 무심하게 지나쳤고 걸어서 5분 거리 쇼핑명소 ‘신천지’ 광장은 인산인해였다.
/상해=양종곤기자 ggm11@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