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신하우징 역사문화탐방] 臨政 찾은 어린이 260명…함께 외친 '애국'

임정100주년 맞아 14~16일 진행
루신공원 등서 先烈 기리기도
김명환 회장, 어린이 사랑 각별
골프대회·장학사업 등 이어와

김명환(앞줄 오른쪽 첫번째) 덕신하우징 회장이 14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광복절 상해 역사문화 탐방’에 참여한 어린이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제공=덕신하우징

“대한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

14일 오후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유적지 앞 골목길. 태극기를 손에 쥔 어린이들이 “대한독립만세”를 큰 소리로 외쳤다. ‘다 함께 구호를 외쳐보자’는 제안에 몇몇 아이들은 부끄러워했지만, 이내 큰 함성이 울려 퍼졌다. 임시정부 청사 안에 들어선 한 아이는 “진짜 사람 같다”며 전시된 인물모형 동상을 보고 놀라는 모습이었다. “백범 김구 선생의 부인 최준례 여사는 묵묵하게 선생의 옥바라지를 했습니다. 그는 출산 후 계단에서 실족해 크게 다친 뒤 폐병까지 얻어 생을 마감했습니다”는 가이드의 설명에는 장난치던 아이들도 엄숙해졌다. 관람을 마치고 나온 양승목(13) 군은 “이렇게 좁은 건물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이 무척 감동”이라며 “가족들과 다시 오고 싶다”고 말했다. 수첩을 들고 꼼꼼하게 메모를 하던 김진우(13) 군은 “이곳은 처음 왔는데, 우리를 위해 고생하셨다는 말씀에 감사하면서도 슬프다”며 “한국에 돌아가면, 이 공간을 ‘마인크래프트’(건물짓는 컴퓨터게임)로 꼭 만들어보고 싶다”며 다부진 각오를 밝혔다.

‘광복절 상해 역사문화탐방’에 참여한 어린이들이 14일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 앞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제공=덕신하우징

각별한 어린이 사랑으로 유명한 덕신하우징이 올해는 260명의 어린이들과 중국 상하이를 찾았다. 덕신하우징은 건물과 교량에 쓰이는 건축용 자재인 데크플레이트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기업이다.

3.1 운동과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덕신하우징이 마련한 ‘광복절 상해 역사문화탐방’은 14~16일 진행됐다. 참가한 초등학생은 각양각색이었다. 15명의 독립운동가 후손부터 덕신하우징이 실시한 ‘나라사랑 공모전’ 당선자, 소외계층, 덕신하우징 공장 인근에 거주하는 초등학생들이다.

임시정부 청사는 1926년부터 1932년까지 임시정부가 상하이에서 사용한 마지막 청사다. 15일 어린이들이 관람한 루신공원(옛 홍구공원)은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기리는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어린이들이 더 쉽게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초등학교 교사 8명이 참여했고 어린이들의 안전을 위해 간호사와 응급구조사도 함께 했다. 덕신하우징 직원들은 조장을 맡아 2박 3일 동안 아이들의 형, 누나가 됐다. 어린이들은 야채탕, 비풍당꽃게요리 등 다양한 중국 전통요리를 맛보며 중국의 식문화를 접했다. 400년 전 명나라 관료였던 ‘반윤단’이 조성한 예원도 찾았다. 14일 상하이 황포강 인근 식당에서 개최된 만찬행사에는 최영삼 상해 총영사가 참석해 이들을 환영했다. 덕신하우징 직원들이 형이나 누나였다면, 김명환 회장은 손주의 손을 잡고 여행 온 ‘할아버지’였다. 임시정부를 찾은 아이들이 2~3명 모여있으면 사진을 찍고 만찬장에 마련된 테이블을 돌면서 세심하게 챙겼다.


이번 탐방을 기획한 덕신하우징은 한국과 중국 왕복항공권을 비롯해 호텔, 식비, 문화행사 관람료 등 총 580여명 참가자의 비용을 전액 지원했다. 이를 위해 두 대의 전세기를 이용했다. 어린이들은 유람선을 타고 상하이 여행의 백미로 꼽히는 야경을 보고 마시청서커스를 관람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이번 탐방이 당초 계획보다 규모가 축소됐다며 오히려 참가한 어린이들에게 미안해했다.

“예정됐던 음악회가 무산돼 탐방을 취소하는 게 좋을지도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공모전’에 출품된 아이들의 그림과 글을 보고 ‘거짓말하는 어른’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을 보면 늘 가슴이 먹먹합니다.”

김 회장은 2013년 농촌에 사는 어린이들과 백두산을 다녀왔고 2014년 전국 초등학생뿐만 아니라 협력업체 직원, 임직원 등 500여명은 독도를 찾아 8·15 음악회를 열었다. 덕신하우징이 후원하는 어린이 골프대회는 올해로 6회째를 맞았다. 올해는 역대 최다인 183명이 경기에 참가했다. 김 회장은 최근 자신의 호를 딴 ‘무봉 장학재단’을 설립하고 더욱 적극적으로 장학사업을 펼친다는 각오다.

김 회장의 어린이 사랑은 자신이 자라온 어려운 환경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절실함에서 비롯됐다. 그는 한국 전쟁기에 충남 홍성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남의 집 일을 하면서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80년 덕신하우징의 전신인 덕신상사를 설립한 후 사업비를 모으다가 영양실조와 늑막결핵에 걸리기도 했다.

“축구도 하고 싶고, 그림도 그리고 싶고 어린이들이 하고 싶은 게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런데 돈이 없어서 못하는 거잖아요. 지금도 한 달에 30만~40만원으로 생활하는 가정도 무척 많습니다.”

김 회장은 바람은 전사적으로 진행 중인 실종아동찾기 캠페인을 통해 잃어버린 아이를 찾아주는 일이다. 자신과 법인 차량까지 실종아동 사진을 붙였지만, 아직 한 명의 아이도 찾지 못했다. 탐방 참가자들이 받은 탐방안내문 한 면에도 8명의 실종 아동 사진이 붙어 있다.
/상하이=양종곤기자 ggm1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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