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올 들어 6월까지 대법원에 접수된 사건은 소송 요건을 갖춘 본안 기준 총 1만8,518건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2만4,889건보다 25.6%나 줄어든 수준이다. 이전 연도와 비교하면 상반기 기준으로 지난 2014년 이후 5년 만에 최저치다.
사건별로는 민사·형사·가사·행정·특허 관련 상고심이 지난해보다 모두 줄어든 가운데 민사 사건의 감소 폭이 특히 컸다. 올 상반기 상고심까지 올라온 민사 사건은 6,591건으로 지난해 동기 1만746건보다 38.7%나 줄었다. 무엇보다 현 정부 들어 부동산 시장이 과열되면서 경매 배당 이의 등 관련 분쟁이 급감한 게 주요 요인으로 파악됐다. 법무법인 바른의 안선영 파트너변호사는 “경매가가 싼값에 낙찰돼야 그 과정에서 분쟁도 발생하는데 최근에는 부동산 수요가 과열되면서 경매가와 실거래가 차이가 많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형사 사건 역시 지난해 상반기 1만1,751건에서 올해 1만5건으로 14.9%나 감소했다. 상반기에 형사 사건 상고심 접수 건수가 1만1,000건 아래로 내려간 것은 2014년 이후 처음이다. 2017년부터 올 초까지 검찰이 박근혜·이명박 정부와 양승태 사법부 등 적폐 수사에만 총력을 기울인 탓에 올해 대법원에 올라오는 사건 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는 평가다.
특허 사건 상고심은 89건으로 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고 가사 사건과 행정 사건 접수 역시 지난해보다 각각 13.5%, 21.9% 줄어들었다. 현 추세대로라면 연간 상고심 접수 건수가 2014년 이후 처음으로 4만건을 밑돌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서울 삼성동 A법무법인의 한 고위 관계자는 “검찰 수사가 적폐 사건으로만 몰린 탓에 최근 형사 사건이 줄어들면서 최상위 로펌들도 송무 시장에서 타격을 입었다”고 말했다.
수년간 이어져 온 상고심 급증세가 올 들어 멈칫하면서 법원의 최대 화두인 상고제도 개편 논의가 정치권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그동안 법원은 연도별 상고심 접수·처리 건수 데이터를 기초로 국회에 협조를 요청해왔다. 국회의 관심이 검경 수사권 조정안,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도입 등 다른 주제로 이미 쏠린 상황에서 상고심의 갑작스러운 감소세는 대법원에 추가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은 3월18일 대법원 업무보고에 참석해 대법관 증원, 상고허가제, 고등법원 상고부, 상고법원, 대법원의 이원적 구성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최근 보고서를 통해 ‘상고심 적체 해소방안 마련’을 올해 대법원 국정감사 이슈로 꼽은 바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올해 다소 줄었다고 해도 대법원 상고 사건은 대법관 수에 비해 여전히 너무 많다”며 “상고제도 문제는 이와 별도로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