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히토 일왕 내외가 15일 태평양전쟁 종전(패전) 74주년 ‘전국전몰자추도식’에서 묵념하고 있다.
제74회 광복절을 맞아 올해 광복절 경축식이 15년 만에 충남 천안의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가운데 일본 정부는 태평양전쟁 종전(패전) 74주년 기념행사인 ‘전국전몰자추도식’을 열었다.
지난 5월 일본을 상징하는 지위에 오른 나루히토(德仁) 일왕은 이 날 도쿄도 지요다(千代田)구에 있는 ‘닛폰부도칸’(日本武道館)에서 열린 이 행사에 참가해 과거 부친처럼 과거사에 대해 ‘반성’의 뜻을 전했다.
반면 최근 한국을 향해 보복성 경제 조치를 강행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7년째 ‘가해’ 책임에 입을 다물었다.
나루히토 일왕은 첫 전몰자추도행사 기념사를 통해 “전몰자를 추도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날을 맞았다”며 “소중한 목숨을 잃은 수많은 사람과 유족을 생각하며 깊은 슬픔을 새롭게 느낀다”고 밝혔다.
나루히토 일왕이 15일 열린 태평양전쟁 종전(패전) 74주년 행사에서 기념사를 읽고 있다.
이어 일왕은 “종전 이후 74년간 여러 사람의 부단한 노력으로 오늘날 우리나라(일본)의 평화와 번영이 구축됐지만 많은 고난에 빠졌던 국민의 행보를 생각할 때 정말로 감개무량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전후 오랫동안 이어온 평화로운 세월을 생각하고 과거를 돌아보며 ‘깊은 반성’(深い反省)을 한다”고 말했다.
또 “두 번 다시 전쟁의 참화가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간절히 원한다”며 “세계 평화와 일본의 발전을 기원한다”고 밝혔다.
이 날 나루히토 일왕이 ‘깊은 반성’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에 대해 지난 4월 30일 퇴위한 부친 아키히토(明仁) 전 일왕의 견해와 같음을 전한 것으로 분석된다.
과거 아키히토 전 일왕은 2015년 추도식 때부터 ‘깊은 반성’이란 표현을 줄곧 사용해 왔기 때문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5일 태평양전쟁 종전(패전) 74주년 ‘전국전몰자추도식’에서 고개를 숙여 전몰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이 날 행사에 참석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기념사에서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와 번영은 전몰자 여러분의 고귀한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이라며 “다시 한번 충심으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바친다”고 말했다.
다만 일제 침략전쟁으로 큰 고통을 겪은 아시아 주변국들에 대한 ‘가해자’로서의 책임이나 반성을 시사하는 언급은 한 마디도 없었다.
아베 총리는 또 “우리나라는 전후 일관되게 평화를 중시하는 나라로서 한길을 걸어왔다. 역사의 교훈을 깊이 가슴에 새겨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해 힘을 다해왔다”며 “전쟁의 참화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 서약은 쇼와(昭和, 히로히토 일왕 연호), 헤이세이(平成, 아키히토 일왕 연호), 그리고 레이와(令和, 나루히토 일왕 연호) 시대에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평화롭고 희망이 넘치는 새 시대를 만들기 위해, 세계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사회와 힘을 합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세대, 내일을 살아가는 세대를 위해 국가의 미래를 열어가겠다”며 기념사를 마무리했다.
이에 대해 교도통신은 “2012년 말 총선에서 이겨 재집권을 시작한 아베 총리는 2013년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8·15 종전 기념행사에서 가해자로서의 일본 책임을 거론하지 않은 셈이 됐다”고 보도했다.
특히 아베 총리는 이날 오전 예년처럼 일제 침략전쟁의 상징인 야스쿠니(靖國)신사에 공물을 보냈다.
아베 총리가 패전일에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이 합사된 야스쿠니에 공물을 바친 것은 2012년 12월 2차 집권 후 7년째다.
아베 총리는 2013년 12월 야스쿠니를 참배해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의 거센 비난을 산 뒤에는 직접 참배하지 않고 종전일과 봄·가을의 춘·추계 예대제(제사) 때 공물을 보내고 있다.
한편 이 날 여야를 막론한 극우 의원들로 구성된 ‘다 함께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 의원 50명은 야스쿠니신사를 집단 참배하는 등 과거의 침략전쟁에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정가람기자 garamj@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