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핵 폭격기를 미국 알래스카와 인접한 극동지역으로 이동시키는 훈련을 실시했다. 러시아 정부는 비행전술 훈련 차원이라고 설명했지만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이 폐기된 뒤 러시아가 미국을 상대로 강력한 핵무기 증강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국방부는 14일(현지시간) 전략폭격기 투폴레프(Tu)-160 2대가 정례 비행전술 훈련 차원에서 극동 추코트카자치구에 속한 러시아 최동북단 도시 아나디리의 비행장으로 이동 배치됐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성명에서 “장거리 항공단 소속 Tu-160 2대가 주둔기지에서 아나디리 비행장까지 단 한 번도 공중급유를 받지 않고 비행했다”며 “비행시간은 8시간 이상이었고 비행거리는 6,000㎞가 넘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의 백조’로 불리는 Tu-160은 옛소련 시절인 지난 1970~1980년대에 개발된 초음속 전략폭격기다. 최대 12기의 단거리핵미사일을 실을 수 있고 중간급유 없이 1만2,000㎞를 비행할 수 있는 군용기로, Tu-95MS와 함께 러시아 공중핵전력의 중추를 이룬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번 이동 배치가 장거리 항공단의 비행전술 훈련 차원에서 이뤄졌다며 이번주 말까지 이어질 훈련에 다른 전략폭격기 Tu-95MS, 공중급유기 일류신(IL)-78 등 군용기 약 10대가 참여한다고 밝혔다.
러시아 군용기 투폴레프(Tu)-160과 Tu-22M3이 지난 5월4일(현지시간) 모스크바에서 비행하고 있다. /모스크바=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이번 훈련은 미국의 INF 조약 폐기에 반발하는 러시아가 미국에 보낸 경고 메시지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으로 가는 관문인 알래스카와 불과 600㎞ 떨어진 아나디리로 폭격기를 보내 미국과의 핵무기 경쟁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는 것이다. 러시아 국방부는 8일에도 Tu-95MS 2대를 베링해 상공의 미국 알래스카와 캐나다 방공식별구역(ADIZ)에 무단 진입시켜 도발을 감행했다. 러시아 관영 ‘로시이스카야 가제타’는“Tu-160의 비행은 모스크바(러시아)가 미국 영토에서 비행거리 20분에 불과한 곳에 핵폭탄을 배치할 능력이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2일 러시아에 책임을 돌리며 양국의 핵무기를 제한하는 INF 조약에서 탈퇴한 데 이어 양국 간 또 다른 군축합의인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뉴스타트)’도 오는 2021년 만료 후 폐기될 수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미국의 주장을 일축하며 즉각 INF 조약을 파기하고 13일 성명에서 “러시아는 새 무기 개발을 이어나가겠다”며 강력한 핵무기 경쟁 의지를 드러냈다.
/김창영기자 kc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