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촉즉발 위기 넘긴 홍콩…18일 집회 분수령되나

■트럼프, 習에 비공식 회동 제안…中 "홍콩사태, 법으로 평정"
트럼프 "인도적 해결" 강조
中도 무력개입 땐 대가 커
시위대, 국제공항 점거 풀고
트위터 통해 여행객에 사과
일요일 대규모 도심집회 예고
무력충돌 여부에 향방 달려

15일 홍콩국제공항을 찾은 여행객들이 출국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지난 12일부터 이틀간 공항을 점거해 초유의 폐쇄 사태를 일으켰던 검은 옷의 시위대는 전날 오후 해산을 시작해 이날 오전에는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았다. /홍콩=전희윤기자

15일 오전11시(현지시각) 홍콩국제공항은 수속을 서두르는 여행객들로 분주했다. 지난 13일 항공기 운항을 전면 중단할 정도로 공항을 가득 메웠던 검은 옷의 시위대는 물론 무장경찰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시위대가 공항 곳곳에 붙이고 여행객들에게 배포했던 전단 역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공항의 한 직원은 “시위대는 어제 해산했다”며 “보다시피 이제 공항은 평상시와 다를 바 없다”고 전했다.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에 반대하는 홍콩 시위대의 대규모 점거시위에 몸살을 앓았던 홍콩국제공항은 거짓말처럼 정상을 되찾았다. 극단적 상황을 넘기면서 일촉즉발로 흘러가던 중국의 무력개입 가능성도 잦아들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무력개입 대신 준엄한 법 집행으로 홍콩 사태를 해결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그동안 방관자적 태도로 일관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중국에 ‘인도적 해결’을 촉구하며 개입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달라진 분위기는 우선 시위대의 태도에서 엿보인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일부 시위대는 14일 낸 성명에서 “항공편 취소와 여행 변경 등은 우리가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며 전날의 혼란과 여행객들의 불편에 대해 사과했다. 13일 밤 공항 점거 당시 중국인 기자 등을 폭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위대의 폭력성이 도마 위에 오르자 시위대 내부에서도 자제 분위기가 확산하는 것으로 보인다. 5년 전 홍콩 민주화시위의 주역이자 송환법 반대시위를 이끄는 조슈아 웡은 트위터에 시위대가 관광객들을 향해 사과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을 게재하며 “여러분의 관용과 이해에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위대는 공항 점거시위를 보류하면서도 도심 시위는 계속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홍콩의 대규모 도심 시위를 주도했던 민간인권전선은 오는 18일 빅토리아공원에서 센트럴차터로드까지 송환법 반대 및 경찰의 강경진압을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와 행진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주최 측이 30만명 이상의 대규모 시위를 예고한 가운데 이날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 여부가 앞으로 홍콩 사태 해결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에 반대하는 홍콩 시위대가 지난 13일 홍콩국제공항에서 관광객들을 향해 ‘불편을 끼쳐 미안하다’는 문구가 쓰인 피켓을 들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송환법 시위를 이끌고 있는 조슈아 웡은 이날 자정께 트윗을 통해 “우리 시위의 목적은 평화적으로 국제사회에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며 “우리의 어려움을 이해해달라”고 호소했다. /조슈아 웡 트위터

다만 홍콩 사태는 이번주를 기점으로 전과 같은 극단적 양상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홍콩 빈과일보에 따르면 시 주석은 이달 초 개막한 베이다이허 회의를 통해 홍콩에 군대를 동원하기보다 준엄한 법 집행으로 사태 해결에 나설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다이허 회의는 중국의 전현직 수뇌부가 모여 중대 현안의 방향과 노선을 정하는 비공식 회의로 홍콩 시위 사태가 격화하면서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무력개입이 결정돼 인민해방군 무장경찰 등이 송환법 반대시위를 진압할 것이라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중국이 홍콩에 무력개입하기에는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며 가능성이 낮다고 진단해왔다. 중국 국무원 자문을 맡은 스인훙 인민대 교수는 “우리가 군대를 투입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며 “홍콩 경찰은 점차 대응수위를 높일 것이며 그들은 아직 모든 수단을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스 교수는 특히 “중국이 (홍콩 사태에) 직접 개입한다면 이는 미국 등 강대국과의 관계를 해치고 중국의 발전에 혼란을 초래하는 한편 홍콩의 특별지위를 잃게 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베이징대의 국제정치전문가 왕융도 “중국 정부는 미국 내 강경파에 ‘탄약’을 주지 않도록 이번 사태를 정말 신중하게 처리할 필요가 있다”며 “홍콩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 경우 무역협상 타결 전망은 물 건너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미중 무역협상과의 연계를 시사하며 평화적 해결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는 14일 트윗에서 홍콩 사태와 관련해 ‘인도적 해결’을 강조하는 한편 시 주석과의 일대일 만남 추진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내놓았다. 중국에 대한 보다 강력한 경고 메시지도 나왔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한 인터뷰에서 “미국은 톈안먼광장을 기억한다”며 군대가 시위대를 유혈 진압한 톈안먼 사태를 홍콩에서 재연하지 말라고 압박했다.

한편 홍콩 정부는 이날 송환법 반대시위가 격화하면서 홍콩 경제에 먹구름이 드리우자 191억홍콩달러(약 24억4,000만달러) 규모의 경제지원 패키지를 발표했다. 홍콩 재무장관은 소외계층과 기업체에 대한 보조금 등이 포함돼 있다며 올해 경제성장률이 종전 예상치인 2~3%에서 0~1%로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홍콩=전희윤기자 박민주기자 parkmj@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