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업종 등 신생노조 급증..이슈마다 '감놔라 배놔라' 집단압력

■ 창간기획-동굴의 우상서 벗어나라
<2>노사갈등 부른 친노동정책
<下>사회균열 키우는 노조정치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5일 광화문광장에서 ‘8·15 전국 노동자 대회’를 열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이날 시위에는 민주노총 측 추산 총 1만 명이 참여했다. /권욱기자

문재인 정부 3년 차 들어 노정관계는 평행선을 달리게 됐지만 노동계는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와중에도 노조 조합원 수를 늘리는 등 여전히 세 불리기에 한창이다. 양대 노총의 성장은 정부가 노동존중사회를 표방하고 관련 정책을 제시하며 노동계의 위상이 달라진데다 양대 노총도 취약계층 종사 업종 및 정보기술(IT) 등 새로운 산업에서 노조를 설립하는 등 조직화에 나선 결과다. 하지만 이렇게 불린 세를 바탕으로 사회적 압력의 주체가 되는 정치 세력화에 주로 집중해 사회적 갈등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서만 4년반 동안 374개 설립

양노총 모두 조합원 100만명 훌쩍

정부·재계와 대립 속 세불리기 한창

노동 외 이슈에도 목청 높이며 강공

정치적 집단화에 기업 종속 우려 커져




◇몸집 키우는 노동계, 양대 노총 100만 시대=양대 노총이 조합원 수를 늘린 시점은 공교롭게도 문재인 정부의 출범 시점과 겹친다. 정부와 노동계 등에 따르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최근 몇 년 사이 조합원 수를 급속히 늘렸다. 덕분에 양대 노총 모두 지난해 말 기준 조합원 수 100만명을 넘겼다. 한국노총은 지난해 말 기준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어섰고 현재는 103만명대를 기록하고 있다. 민주노총 역시 올 3월 기준 조합원 100만명을 넘어섰다.

특히 민주노총은 지난 3년 새 36% 가까이 세를 불리며 돌풍의 주역이 됐다. 정부의 친노동정책을 바탕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구호로 내걸면서 비노조원들이 폭발적인 성원을 보낸 결과다. 이에 따라 지난해부터 IT·프랜차이즈 등 기존에 두드러지지 않던 업종 및 취약계층 종사 업종에서 새롭게 노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지난 2017년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들이 노조를 만들었고, 지난해에는 네이버·넥슨·스마일게이트·카카오·안랩 등에서 노조가 조직됐다. 올 들어서는 배달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음식 배달 노동자들의 노조 ‘라이더유니온’이 5월1일 출범했고 6월에는 웅진코웨이·청호나이스·SK매직 등 가전통신 업체를 중심으로 전국가전통신서비스노조가 출범했다.


크고 작은 노조의 설립도 계속해서 늘어나는 추세다. 서울시 25개 자치구가 2015년부터 지난달까지 노조설립 신고를 받은 자료를 서울경제가 전수조사한 결과 4년 반 동안 총 374개의 노조가 설립신고교부증을 받았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부터 노조설립 건수는 소폭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새로 만들어진 노조 수는 2015년 72개에서 지난해 85개로 늘었으며 올해는 반년 만에 55개가 생겼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공약을 내놓는 등 노동존중사회를 표방하며 기대감이 높아진 효과가 있다”며 “실질적인 정책에서 아쉬운 면이 있지만 취약계층의 노조 결성과 가입이 두드러진다. 노조에 가입해도 계약 종료 등 불이익이 적을 수 있겠다는 심리적 안전판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는 단계별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계획을 실행 중이며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노동관계법 개정도 추진하고 있다. 양대 노총이 노조의 조직화를 위해 여러모로 노력한데다 정부발 외부 조건이 맞물리면서 조합원 100만 시대를 열게 됐다.


◇‘집단 압력’ 나서는 노동계…더 커지는 사회 갈등=힘을 키운 노동계가 집단화된 압력을 행사하면서 정부·정치권·재계 등과의 마찰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과도한 노사·노정 갈등이 불거지며 사회적 비용이 늘어난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치 세력화할수록 필요 이상의 강공적 메시지를 내게 되고, 세력이 커질수록 ‘표심’ 등을 의식해 이런 주장이 먹힐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1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개최한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일본의 아베 신조 정권을 규탄하며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의 파기를 요구하기도 했다. 앞서 지난달 18일 총파업에서는 노동 개악 저지, 노동기본권 쟁취, 비정규직 철폐, 재벌개혁, 최저임금 1만원 폐기 규탄, 노동탄압 분쇄 등의 구호를 내걸었다. 4월에는 탄력근로제 개편안에 반발해 국회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중 경찰과 충돌했고, 이로 인해 김명환 위원장이 구속됐다 6일 만에 풀려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의 구속으로 노정관계의 추락을 우려한 정부 측에서 민주노총에 ‘경고장’ 전달만 하는 선으로 정무적 판단을 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개별 노조에서도 노사 갈등이 커지기는 마찬가지다. 각급 학교의 급식·돌봄교실 등 교육 공무직 노동자들은 지난달 3~5일 정규직화와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벌인 데 이어 다음달 개학 뒤 2차 총파업도 예고하고 있다. 이들은 공무원이 아닌 근로자로 단체행동권이 없는 교사직과는 달리 파업 등 쟁의행위가 가능해 학교 현장이 갈수록 거센 파업에 노출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인천공항공사 노조, 한국도로공사 노조 등은 비정규직의 자회사 고용을 통한 정규직화 계획에 반발해 사측과 길게는 1년 넘게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거래소 노조는 최근 자유한국당의 거래소 출입을 막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가 9일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제2의 IMF 위기가 온 것 아니냐 하는 심리가 퍼져 있다”고 발언한 것과 관련해 자본시장을 정쟁의 도구로 삼았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노동계는 이에 대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나 아베 정권 규탄 등의 사안이 근로조건 등과 연관성이 없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해 고용노동부가 일부 업종에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아울러 노사정이 ‘사회적 대화’를 통해 최저임금을 비롯해 조세·연금 등 각종 이슈를 다루고 있는 만큼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노조의 정치화 기류에 대해 전문가들은 우려와 조언을 동시에 보내고 있다. 서경 펠로인 김강식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노동계의 주장이 지나치게 많이 반영되면 국가 경제에 어려움이 발생할 여지가 크다”며 “이 과정에서 이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입법이 정치권에서 이뤄지면 기업도 노동과 관련해 자율적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집단화된 압력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노동권을 존중하는 최소한의 보루로 노조가 있는 건 좋은 점이지만 경영계에서는 노조가 많아지는 것에 대해 우려할 수 있다”며 “무노조로 경영 성과를 낼 수 있는 시대는 아니니 사측은 경영전략의 고도화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준호·손구민기자 violat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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