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장관 /AFP=연합뉴스
한국 정부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두고 6.25전쟁 이후 동북아에서 북·중·러의 위협을 효과적으로 방어한 한·미·일 삼각 동맹의 균열을 상징하는 사건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지소미아 협정 종료 시한인 11월 22일까지 유예기간이 아직 남아있는 만큼 그간 방관자적 태도를 보여온 미국이 지금이라도 한일 중재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가 극단적인 배수진을 치게 된 데에는 한일갈등 중재에 나서지 않으며 폭탄 방위비 청구서만 요구하는 미국에 대한 서운함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일중재를 원하는 한국의 희망과 달리 방관자적 입장을 취하며 한미일 삼각 동맹의 리더로서의 책임을 다 하지 않았다.
동북아의 패권을 두고 중국과 경쟁하고 있는 미국도 한미일 삼각동맹의 균열은 북한 비핵화 문제와 대(對) 중국 견제 약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의 적극적인 중재역할이 필요하다는 미 조야의 목소리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해리 카지아니스 미 국익연구소 한국 담당 국장은 이날 한 국내 언론에 서면 입장을 보내 “지금 필요한 것은 트럼프 행정부가 한미일에 외교적 재앙이 될 수 있는 것을 다루기 위해 관여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트럼프팀’이 한국과 일본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모을 필요가 있고 트럼프 대통령은 트윗으로 한일 외교장관이 대화를 위해 미국으로 오도록 쉽게 초청할 수 있다. (한일) 양국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미국과학자연맹(FAS)의 국방태세프로젝트 앤킷 판다 선임연구원도 뉴욕타임스(NYT)에 “우리는 매우 위험한 시기에 우리의 두 동맹국 간 정보 공유의 중요한 원천을 잃게 될 것”이라며 “이 (트럼프) 행정부가 동북아시아에 (한미일) 3자를 위한 단단한 기초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투자하지 않았다는 흔적”이라고 비판했다. 실제 미국이 적극적인 중재역할에 나설 경우 한일갈등이 극적으로 봉합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청와대가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했다고 해도 협정의 효력은 만료시점인 11월 22일까지 유지된다. 지소미아는 국회의 비준을 받아야 하는 까다로운 조약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이 중재역할에 나서면 한국이 종료 결정을 철회하거나 조건부 유지로 입장을 바꿀 수 있는 명분이 될 수 있다. 실제 한일 양국이 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가 극적으로 봉합했던 전례도 있다. 1998년 1월 일본정부는 독도 주변 잠정 수역을 둘러싼 한일갈등이 격화되고 한국이 IMF 사태로 혼란에 빠진 틈을 타 일방적으로 한일어업협정 파기를 선언했다. 하지만 확전을 우려한 양국이 17차례 걸친 회담을 통해 1998년 9월 25일 신한일어업협정을 타결해 갈등을 봉합한 바 있다. 당시 외교가에서는 실리 외교를 추구하는 김대중 대통령의 한일정상회담 추진이 큰 영향을 줬다는 평가가 나왔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일(현지시간) 방콕 센타라 그랜드호텔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과 외교장관회담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방콕=연합뉴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도 22일(현지시간)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외교장관과 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우리는 (한일) 두 나라 각각이 관여와 대화를 계속하기를 촉구한다”면서 “한일의 공동 이익이 중요하고 이는 미국에 중요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강조해 미국의 역할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을 갖게 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해 직접적인 불만을 표하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지소미아 종료와 관련한 질문에 “오늘 아침 한국 외교장관과 통화했다”면서 “우리(미국)는 한국이 정보공유 합의에 대해 내린 결정을 보게 돼 실망했다”고 말했다.
이는 지소미아 유지를 끊임없이 요구했음에도 한국이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내린 데 따른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해석된다.
폼페이오 장관에 이어 미 국방부도 이날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해 데이브 이스트번 대변인 명의의 논평을 통해 “강한 우려와 실망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청와대가 전날 지소미아 종료 결정과 관련 미국이 우리의 결정을 이해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과는 상반된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이 쏟아지면서 한미동맹에 금이 가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박우인기자 wi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