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발견한 정원, 마음에 잔잔한 파동을 그리다

[디자인의 재발견-슬로앤스테디]
혜화 큐레이팅 서점 '어쩌다 산책'
일본식 자갈정원, 단풍나무 한그루로
지하의 삭막함, 고요함으로 바꿔

디자인스튜디오 ‘슬로앤스테디’가 조경작업으로 참여한 혜화동 서점 ‘어쩌다 산책’. 자연석을 중심으로 난 파동이 인상적인 작은정원이 보인다. 서점의 통창은 모두 정원을 바라보고 있어 책이 주는 여유로움이 안팎으로 확장되는 듯한 느낌도 준다.

거리를 둘러보며 산책하듯 걷지 않는다면 지나치고 말 서점이 있다. 지하에 위치해 눈에 잘 띄지도 않는데 심지어 그 흔한 입간판 하나 세워놓지 않았다. ‘어쩌다 산책’이란 이름처럼 우연히 발견할법한 곳이지만, 일단 지하로 난 계단을 밟는데 성공했다면 한번 더 방문은 필연이다. 서점으로 향하는 계단 아래 공간적 제약을 넘어선 자갈정원의 파동이 방문객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반대편엔 작은 이끼언덕 위 단풍나무 한그루가 서있다. 지하의 삭막함을 상쇄시킨 디자인 스튜디오 ‘슬로앤스테디’의 안숲 공동대표를 만났다.

슬로앤스테디는 안숲·배동현씨 부부가 운영하는 스튜디오다. 지난 2015년 ‘서른이 되기전에 하고 싶은걸 할테야’라는 다소 무모해보이는 20대의 패기로 연인이었던 둘이 의기투합한 것. 식물작업은 안 대표가 나무작업은 배 대표가 맡는다.

지하로 난 계단을 내려오면 공간적 제약을 넘어선 자갈정원이 펼쳐진다.

△혜화동 어쩌다 산책의 첫 인상은 ‘일본식 정원’입니다.

-처음엔 인테리어 컨셉을 모른채 도면만 받고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책방과 카페를 겸한 곳에 정원을 만든다’는 정도였죠. 현장을 보러왔는데 지하인거예요. 물론 지층으로 난 계단 부분은 천장이 뚫려있지만 어떻게 조경작업을 진행해야 되나 막막했죠. 다행히 왼편은 저녁에 햇빛이 많이 들어와요. 그 공간엔 나무를 한그루 심기로 하고, 나머지 공간은 빛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젠가든, 일본식 정원을 컨셉으로 잡았어요. 빛이 많이 필요하지 않으면서도 조화로울 수 있게요.

왼편엔 이끼로 덮은 작은 언덕 위에 단풍나무 한그루가 꼿꼿이 서있다.

혜화에 위치한 큐레이팅 서점 ‘어쩌다 산책’이 들어서기 전의 모습. 안숲 대표의 말처럼 지하주차장과 다름없어 보인다.

△나무를 중심으로 걷는 물리적 산책과, 시선을 따라 마음으로 걷는 정신적 산책 두가지 컨셉을 녹였다고요.

-계단을 기준으로 왼쪽과 오른쪽을 다른 컨셉의 산책으로 녹여내고 싶었어요. 왼편은 단풍나무를 중심으로 물리적 산책을 할 수 있는 말 그대로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정원을 만들었죠. 배수로가 여기 딱 한군데 뿐이라 단풍나무를 심기 위해 큰 대야위에 식재를 하고 파이프로 연결하는 까다로운 작업을 거쳤어요. 오른편은 눈으로 감상하는 마음 산책로를 구상했어요. 매장 외부에 큰 거울이 들어서면서 그 부분이 더 잘 표현된 것 같아요. 평상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공간이 확장된 느낌을 받죠. 이끼를 많이 활용했어요. 빛을 받으면 색이 바래고 물을 자주 줘야 해서 야외에 쓰기가 어려운데 이 공간에는 되려 잘 맞았죠. 중간 중간 놓인 돌들도 모두 이끼가 붙어있는 자연석이에요. 그 위에 인조이끼와 식재한 이끼를 섞어서 썼어요. 진한 초록, 색바랜 초록 등으로 초록색을 레이어드한 느낌이라 좋아요. 밑이 보일러실이라서 물을 쓸 순 없으니 자갈로 물처럼 느껴질수있게 했어요. 파동형태를 만드는 나무 도구는 직원분들이 빗이라고 불러요. 직접 자갈정원을 고르는 그 행위 자체가 이곳의 아이덴티티인 사색이고 명상을 뜻하기도 합니다.

△살아있는 식물을 활용해 디자인작업을 하는건 구상만큼이나 관리의 역할도 클 것 같은데요.

-사실 손이 많이 가죠. 여기 있는 이끼들은 모두 분무기로 마르지 않게 물을 뿌려줘야 해요. 인조이끼를 섞어 쓴 이유 중 하나도 그거죠. 유지보수의 용이성을 위해서요. 인조이끼가 이끼에 비해 3~4배 정도 비싸요. 하지만 섞어 쓰면 오히려 더 자연스럽고 푸른 빛을 유지해서 싱그러운 느낌을 줘요. 클라이언트 역시 나무에 대한 이해도는 필수예요. 나무가 수축, 팽창하고 식물이 사시사철 변하는 건 당연한 것이자 자연스러운 것이니까요.

서울식물원 보타닉 북라운지의 내부 모습.

△최근엔 책이 있는 또 다른 공간 기획에 참여하셨죠. 서울식물원의 ‘보타닉 북라운지’요.

-작년에 서울국제도서전의 통합부스 기획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 공간을 눈여겨본 서울식물원이 북라운지 기획을 의뢰했어요. 한달 운영하는 팝업코너였는데 반응이 좋아 상설공간으로 운영하게 됐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식물로 가득 찬 공간안에서 식물의 또 다른 매력을 이끌어 내는 작업이었겠군요.

-식물원이 큰 공원이잖아요. 이곳의 관람포인트는 온실이에요. 지중해와 열대기후 환경을 바탕으로 한 세계 12개 도시 정원이 펼쳐지는데, 말 그대로 이국적이에요. 길에서 접할 수 있는 식물이 아닌, 외국 식물 위주라 개인적으로 오히려 인공적인 느낌이 들었어요. ‘전시관에 왔다’는 생각. ‘보타닉북라운지’ 위치가 온실을 관람한 후에 오는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진짜 숲같은 느낌을 주려고 했어요. 관엽식물이나 해외 식물은 피하고 실제로 숲에서 볼수있는 야생화 위주로 꾸몄어요. 숲이나 들판에 머무는 것처럼요.

천장에 여러겹의 천을 매달아 책장이 겹쳐진 듯한 효과를 연출했다.

△천장에 걸린 얇은 천들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이 인상적인데요.


-천 한장 한장을 책 한장 한장처럼 보이게 하고 싶었어요. 마치 한권의 책을 펼쳐 놓은 효과를 원했거든요. 천을 레이어했을 때 영상을 투과시키면 여러장의 이미지로 겹쳐서 나오잖아요. 천 위에 쏘는 영상컨텐츠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서울사는 나무’라는 책을 쓰신 장세이 작가님과 협의를 통해 책의 그림과 문구, 사진을 쓸 수 있었어요. 고맙게도 장 작가님이 일요일마다 총 4회 상담프로그램도 진행해주셨죠.

북라운지는 모듈가구로 채웠다. 책을 수납하거나 의자로 활용하는 등 하나의 가구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제작했다.

△살아있는 것을 다룬다는 특성이 작업기간에 영향을 미치나요?

-그럼요. 그래서 모든 과정을 촘촘히 구상해요. 컨셉을 잡으면 조감을 보고 후보를 꼽아놨다가 농장이나 업체를 직접 돌아보는 일련의 과정들을 여러 번 거쳐요. 제일 마지막 단계에 조경작업이 들어가는데다 바로 관리해주지 못하면 금세 시들어서 하루에서 이틀 안에 작업을 끝내야 하거든요.

/김나영기자 iluvny23@sedaily.com

/사진제공=슬로앤스테디
디자인 스튜디오 ‘슬로앤스테디’를 운영하는 안숲(오른쪽), 배동현 공동대표.

안숲의 취향에 대하여

△최근에 산 물건은?

-오시노 도시야의 책 ‘아름다운 정원 조경 레시피 85’

△여행갈 때 꼭 챙겨가는 게 있다면?

-꽃가위랑 비닐봉지.

△일로써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패션화보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한다면?

-농부. 강화도에서 허브를 직접 키우고 있는데 그 수확의 기쁨은 말로 다 못한다.

△지금 이순간 가장 간절한 것은?

-서울을 벗어난 환경친화적인 새로운 작업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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