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뒷담화]보좌관·전문의 등 드라마 작가 배경 다양해진 이유는

작가 본인 전문성 살린 이색 작품 잇달아
정현민 국회의원 보좌관·송윤희 의학전문의 등
중견작가 중엔 송재정·이우정 등 예능프로 출신 두각
'뷰티인사이드' 임메아리·'검색어...' 권도은 작가 등
유명작가 밑서 내공 쌓아 데뷔 등 등용방식 다양화
CJ ENM은 '오펜' 교육 과정 통해 신인작가 육성도

2014년 KBS 연기대상에서 ‘정도전’으로 작가상을 수상한 보좌관 출신의 정현민 작가. /사진=KBS 캡처

드라마 제작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해지면서 드라마 트렌드도 바뀌고 있다. 전 세대를 아우르는 드라마보다는 특정 세대를 타깃으로 하는 작품이 늘었다. 스릴러 등 장르극이 늘었고 정치극, 퓨전 사극, 판타지극 등 이전에 없던 소재들로 풍성하다. 이 같은 변화와 맞물려 드라마 작가 시장에도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이전에는 ‘이야기를 잘 풀어내고 글을 잘 쓰는 공모전 출신 작가’가 대세였다. 반면 지금은 신예들의 활약이 두드러진 가운데 작가 본인만의 경험과 전문성을 녹여낸 색다른 작품들이 주목받고 있다.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의 정현민, 산업의학전문의 송윤희, SBS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 작가 출신의 한우리 등이 대표적이다. 중견 작가 중에는 송재정, 이우정 등 예능 프로그램에서 내공을 다졌던 이들이 입지를 탄탄히 다지고 있다. 작가들이 데뷔하는 등용문도 다양해졌다. 지상파 공모전뿐만 아니라 유명 작가 밑에서 수련한 뒤 데뷔하거나 CJ ENM 오펜 등과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기본기를 쌓고 첫 작품을 선보이는 추세다.

시트콤 작가 출신인 송재정 작가. /사진제공=tvN

◇특이한 배경 자랑하는 드라마 작가들= 드라마 작가들의 다양한 배경은 작품에서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OCN ‘작은 신의 아이들’의 한우리 작가는 SBS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 작가 출신인 만큼 종교계 집단 자살 사건 등 다소 자극적인 사안을 생생하게 풀어 호평받았다. 현재 방영 중인 SBS ‘닥터탐정’에는 산업의학 전문의 출신 송윤희 작가가 참여해 사실성을 높이고 있다. 지난 2014년 방영된 KBS1 TV 드라마 ‘정도전’으로 스타 작가 반열에 오른 정현민 작가는 의원 보좌관 출신으로 화제가 됐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녹여 2015년 KBS2 TV에서 방영된 ‘어셈블리’를 집필했다. 최근에는 SBS ‘녹두꽃’을 집필하며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소설 ‘미스 함무라비’의 저자 문유석 판사는 지난해 JTBC에서 방영된 동명의 드라마 대본을 직접 쓰기도 했다.

본인 경험이 아니더라도 탄탄한 취재를 바탕으로 한 작품도 사랑받고 있다. 최근 종영한 MBC TV 월화극 ‘검법남녀2’는 법의학의 세계를 심도 있게 다뤄 마니아 팬층을 형성했다. 일반인에 생소한 분야지만 법의관을 배우자로 둔 민지은 작가의 풍부하고 탄탄한 취재가 바탕이 됐다.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사건을 고민할 때 남편이 가장 많이 도움을 준다”며 “아이디어나 영감을 많이 얻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해 방영된 OCN ‘작은 신의 아이들’의 한우리 작기는 SBS 시사교양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 작가 출신 드라마 작가다. /사진제공=OCN

이미 자리를 잡은 중견 작가 중에는 예능 출신들의 활약이 눈에 띈다. 최근 tvN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과 ‘인현왕후의 남자’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을 집필한 송재정 작가는 SBS ‘순풍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MBC ‘거침없이 하이킥’ 등 시트콤 작가 출신이다.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매번 30분 이내에 완결을 내야 하는 시트콤에 익숙해서인지 드라마를 쓸 때도 1시간짜리 영화를 쓴다는 생각으로 엔딩이 정점을 찍고 다음 회에 이어나가도록 풀어나간다”고 밝히기도 했다. tvN ‘응답하라’ 시리즈로 큰 사랑을 받은 이우정 작가 역시 KBS ‘1박2일’, tvN ‘꽃보다 할배’ 등 예능 출신이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 ‘별에서 온 그대’ 등을 집필한 박지은 작가는 1990년대 후반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 등 예능 프로그램에서 구성작가 활동을 했고 ‘부부클리닉-사랑과 전쟁’ 시리즈 대본을 쓰다가 드라마 작가가 됐다.


공희정 드라마 평론가는 “예전에는 소설가처럼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드라마 작가가 됐다”며 “이제는 글을 잘 쓰는 것은 기본 소양이고 소재 조사력이나 본인의 경험을 작품에 녹여 현실감을 주는 게 더 중요한 시대”라고 말했다.

오펜 로고. /사진제공=CJ ENM

◇신예 작가가 뜬다… 넓어진 등용문= 기존에는 KBS·MBC 등 지상파에서 시행하는 공모전을 통해 드라마 작가로 데뷔했다. JTBC ‘스카이(SKY)캐슬’로 화제를 모았던 유현미 작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최근에는 등용문이 대폭 넓어졌다. 유명 작가 밑에서 보조작가나 팀으로 일하면서 내공을 쌓아 데뷔하거나, CJ ENM의 오펜 프로그램을 통하는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한다. 최근 종영한 tvN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는 ‘시크릿 가든’ 때부터 김은숙 작가의 보조작가였던 권도은의 입봉작이다. 트렌드를 이끄는 포털사이트에서 당당하게 일하는 여자들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다뤄 화제를 모았다. 지난해 JTBC에서 방영된 ‘뷰티인사이드’ 역시 김은숙 작가의 보조작가였던 임메아리의 작품이다. 김은숙 작가는 ‘태양의 후예’, ‘도깨비’, ‘미스터 선샤인’ 등 내놓는 작품마다 대박을 터뜨린 만큼 이들은 김은숙 작가의 보조작가 출신이라는 것만으로도 큰 관심을 받았다.

CJ ENM의 오펜은 작품을 통해 신인 작가들을 선발한다는 점이 공모전과 비슷하다. 하지만 선발된 이들이 1년 가까운 교육과 작업실을 제공받으며 기본기를 다질 수 있다는 게 차별점이다. 올해 3월 진행한 단막극·시나리오 공모전을 통해 드라마 20명과 영화 10명이 오펜 3기 작가들로 선발됐고, 오펜 1기 작가 출신들이 지상파·tvN·넷플릭스 등에서 활약 중이다.

공 평론가는 “방송 환경 변화로 드라마가 많이 제작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특이하고 차별화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새로운 작가들이 등장했다”고 평했다. 현직 중견 드라마 작가는 “신인 작가들이 데뷔하기에는 장르극이 더 수월한 측면도 있다”며 “장르극은 사건을 중심으로 펼쳐지기 때문에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는 특정한 형식이나 자체 구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OCN ‘보이스3’ 포스터. 마진원 작가는 ‘보이스’를 시즌3까지 히트시켰다. /사진제공=OCN

특히 지상파보다는 젊은 시청자들을 공략하는 tvN이나 OCN 채널에서 신예 작가들의 활약이 더욱 눈에 띈다. 최근 tvN 드라마로 입봉한 작가는 ‘그녀의 사생활’의 김혜영 작가, ‘자백’의 임희철 작가 등이 있다. 마진원 작가는 OCN ‘보이스’를 시즌3까지 히트시켰으며, tvN ‘굿와이프’와 OCN ‘왓쳐(WATCHER)’를 집필한 한상운 작가, tvN ‘싸우자 귀신아’와 OCN ‘라이프 온 마스’, JTBC ‘보좌관’까지 집필을 이어가고 있는 이대일 작가도 주목받고 있다.

10대~20대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웹드라마도 드라마 작가로 발돋움하는 등용문 역할을 하고 있다. 한 신인 드라마 작가는 “처음에는 웹드라마에서 일을 시작할 생각도 할 만큼 웹드라마 제작이 활발해지면서 이전보다 문이 넓어진 거 같다”며 “웹드라마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작가들이 드라마 제작사에서 러브콜을 받기도 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김현진기자 stari@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