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에스퍼 미 국방부장관./로이터=연합뉴스
한국정부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선언 이후 대한(對韓) 비판에 집중하던 미국이 28일(현지시간) 처음으로 일본에 대한 실망감을 표명했다.
지소미아 종료를 두고 한미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나온 미국의 대일 비판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특히 한일갈등에 따른 한미일 동맹의 균열은 미중 패권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의 동북아 국익에 부합되지 않는 만큼 물밑에서 미 행정부가 물밑 중재에 나설 지 주목된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소미아 종료 결정이 군사적 운용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질문을 받고 “(한일) 양측이 이에 관여된 데 대해 매우 실망했고 여전히 실망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달초 한국과 일본을 방문해 카운터파트를 만났을 때 실망감을 표현했고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면서 한일이 현재의 갈등 상황을 뛰어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선언이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로 인한 것이었음에도 대일(對日) 비난을 자제하던 트럼프 행정부 내 고위 당국자의 발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이 일본에 대한 우려를 첫 표명한 것을 두고 외교가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미중 패권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동북아의 핵심 동맹 간 갈등 봉합에 나서기 위한 포석을 깐 것 아니냐는 분석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지난 2016년 11월 지소미아 체결 당시에도 버락 오바마 정부는 동북아에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일 양국을 압박한 바 있다.
특히 한일갈등이 커지면서 미중 조야를 중심으로 동북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감소했다는 비판 여론이 나오는 것도 트럼프 행정부에는 부담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에스퍼 장관은 “우리에게는 북한과 중국, 그리고 더 큰 위협 등 직면하고 있는 공동의 위협이 있다”며 “우리는 함께 협력할 때 더욱 강해진다”고 한미일 동맹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에스퍼 장관은 한일이 이를 잘 넘어서길 희망한다며 “우리는 공유하고 있지 않은 것보다 공유하고 있는 이해관계와 가치가 더 크다. 나는 이를 토대로 나아가길 원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문제를 빨리 해결, 앞으로 진전해 우리가 필요로 하는 중요한 궤도로 돌아가길 바란다”고 한일 양국에 갈등해결을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조지프 던퍼드 합참의장도 지소미아 종료 결정과 관련, “현재로서는 군사적 운용에 대한 영향은 보지 못했다”면서도 한일 관계 악화와 관련해 “(에스퍼) 장관의 실망을 공유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다른 방법들을 갖고 있지만 매우 강력한 (한일) 양국 간 정보공유 합의와 같이 효과적인 것은 없다”며 지소미아 연장 필요성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7월 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독일 함부르크 시내 미국총영사관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만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지소미아 종료 시한인 11월 22일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있는 만큼 미국은 한일 양국을 설득해 갈등해결을 지속적으로 촉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중재가 기대되는 첫 번째 외교무대는 9월 하순에 열리는 뉴욕 유엔 총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방콕과 베이징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으로 양자 간의 해결이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 증명된 만큼 미국의 중재는 중요하다. 다만 일각에서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숙원인 평화 헌법 9조(전력보유 금지 및 교전 불승인)를 개정할 때까지 한일갈등 국면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미국의 중재가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한편 미국은 전날 한국 정부의 자제요청에도 지소미아 종료 결정과 관련 대한(對韓) 비판을 이어갔다.
랜들 슈라이버 미 국방부 인도·태평양 안보담당 차관보는 이날 오전 ‘한미일 안보협력의 중요성’을 주제로 한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공개 강연에 나서 한국 정부에 지소미아 연장을 촉구했다. 슈라이버 차관보는 “(지소미아 종료 결정이) 우리가 동북아에서 직면한 심각한 안보도전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의 심각한 오해를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우려한다”면서 “한일이 불화할 때 유일한 승자는 우리의 경쟁자들임을 강조한다”고 했다. 앞서 조세영 외교부 제1 차관은 전날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를 서울 도렴동 청사로 불러 지소미아 종료와 관련한 미 행정부의 공개적인 불만 표출 및 발언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외교가에서는 한국 정부가 사실상 이례적으로 미국대사를 초치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박우인기자 wipark@sedaily.com